[OC비지니스] “풀러튼약국 함 약사는 천상 약사다”
페이지 정보
본문
공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뢰 해야 할 것 같아서 한 친절 감동 “건강은 자신할 것이 절대 아니야”
풀러튼약국 함인식 약사는 천상 약사다. 병을 앓고 약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올바른 처방약을 지어주는 것은 물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공감이라는 약을 지어준다. 그리고 평안함과 희망을 약효로 나눠준다. 그래서 풀러튼약국을 아는 사람들은 “풀러튼약국” “풀러튼약국” 한다.
고객을 위한 오지랖 약사들
풀러튼약국에 들어서면 분주함이 사람을 맞는다. 약국 바깥쪽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의 여유와 달리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조제실 안쪽의 열 명 남짓 직원들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계속해서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고, 의료 네트워크로 병원에서 보내온 처방전을 꼼꼼히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포장된 약을 이름과 날짜별로 분류해 정리하는 사람도 있다. 옆에서 말 한마디 건네기가 눈치 보인다. 고객들의 건강을 위해 처방된 조제약에 실수가 있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긴장감마저 감돈다.
하지만 빠르게 시침이 흐르고 긴장감이 팽배한 조제실 안쪽 공간에도 유독 시간이 느려지는 곳이 있다. 고객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앞쪽 창구다. 이곳에선 서두름이 없다. 고객이 이해할 때까지 약에 대해 설명하고 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반복된 고객들의 질문도 짜증 없이 답한다. 그래서 여기는 시간을 잡아둔 곳이다. 바로 함인식 약사가 30여 년을 지켜온 원칙의 공간이다.
함인식 약사의 말이다. “특별할 것 까지는 없어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죠. 그저 신경 쓰는 것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처방약을 처음 받았을 때나 새로운 약을 받았을 때 손님들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자기자랑이 어색하기만 한 함 약사. 그러다 보니 자랑이라도 하라치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하는 친절함은 함 약사의 천성이다. 함 약사가 이러니 풀러튼약국의 6명의 약사들 모두 같다. 약사법에서 정해 둔 설명 이외에 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일일이 설명해 주는 것에 이미 익숙하다.
같은 약효의 약을 비싼 것으로 처방받아 온 경우를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고객의 경제적인 면까지 고려하는 오지랖이다. 구지 시간을 들여 의사에게 전화하고 다른 약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지 묻는다. 약국에선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함인식 약사는 “콜레스테롤이나 당뇨, 혈압 조절을 위해 먹는 약에는 수백 달러짜리 약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약국을 찾는 시니어들 중 80% 정도가 메디케어를 사용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부담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이런 분들은 장기간 약을 드셔야 하고요. 다행히 의사 선생님들께 전화하면 대부분 그런 사정을 알고 흔쾌히 다시 처방을 보내 줍니다. 요즘은 같은 약효를 지녔어도 가격 차이가 많은 것이 많이 있거든요”라고 설명한다.
풀러튼약국의 약사라면 또 하나 몸에 익은 것이 있다. 처방전 없이 구입 할 수 있는 약들을 고를 때 득달같이 달려가 약의 효능과 부작용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일. 함 약사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하는 친절에 다른 약사들은 모두 ‘그렇게 해야 하나 보다’하며 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풀러튼약국의 친절도 그렇게 흐른다.
고객 배려를 위한 투자
약국을 찾는 고객들에 대한 배려는 서비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약을 사기 위해서만 오는 곳이 아니라 오다가다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풀러튼약국에 스며있다.
풀러튼약국은 돌아서기도 불편할 정도로 약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약국이나 긴 장의자에 앉아 어색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다른 약국들과 다르다. 카페 같은 분위기다.
기다리며 신문이나 잡지를 볼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 있고 여러 개의 의자들이 있다.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는 통로를 따라가면 또 다른 모퉁이에 언제든지 빌려 볼 수 있는 책들이 있다. 낮은 칸막이까지 있어 앉아서 짧은 글을 읽기에도 그만이다.
한쪽 벽에는 함 약사가 모아둔 사진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들이 지나온 세월을 말하려고 눈을 마주친다. 바로 옆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낡은 골프채며 축구공, 야구공, 각종 트로피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다른 벽을 보면 오래된 동전들과 다양한 역사 자료들이 손님의 여유와 대화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취미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 대화의 문이 열리더라고요. 제가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사진 찍은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래저래 모아둔 것이 많아요. 처음엔 한두 개 진열해 둔 것을 보고 나중에는 손님들이 자신들의 소장품을 가져다 주기도 했어요. 진열돼 있는 것들 반 이상은 손님들이 기증해 준 것 들입니다”
꼬마 손님들이 와서 고장을 내기 전까지는 오래된 턴테이블도 있었다. 팝 음악의 전설인 비틀즈 멤버들의 싸인 담긴 사진이도 있었고, 앨범표지도 있었다. 또 7080년대 록 음악의 거장인 레드제플린의 기념음반이며, 오래된 타자기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눈에 익숙해지면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진열해 둔 것들을 다 바꿉니다. 진열되어 있는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더 편하게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어떤 목적이 있어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손님들도 좋아하고 저도 더 행복지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약국에 있는 ‘볼거리’, 어쩌면 말은 쉽다. 하지만 그 속내는 다르다. 그 볼거리를 위해 함 약사 나름대로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처음 1600스퀘어피트를 사용하던 약국이 이제는 2600스퀴어피트를 사용한다. 약들만 진열해 두려고만 생각했다면 1600스퀘어피트도 충분한 공간이다.
거기에 다른 약국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는 것이 있다. 출입구에 놓여 있는 무료 음료수 냉장고다. 시원한 물도 있고 청량감이 가득한 음료수들이 종류대로 있다. 아는 사람은 무료라는 것을 다 안다. 그래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나씩 거내들고 나간다.
“손님들 때문에 돈을 벌었으면 다시 손님들을 위해 어느 정도는 투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 중에 무료 음료수 냉장고를 설치했어요.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집사람이었고요. 지금 생각해 봐도 제일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약사들의 마음의 약사
함인식 약사의 배려심은 고객들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그 마음은 전달된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직원들이 많다. 짧게는 4년부터 길게는 풀러튼약국이 문을 연 기간인 12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람들이다.
처음 막연히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던 청년이 약대를 진학하고,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다시 풀러튼약국으로 취업한다. 그리고 풀러튼약국을 시작으로 약사의 길로 들어선 직원들도 부지기수다. 일하면서 약사가 어떤 직업인지 도전받고, 약사라는 직업이 자아실현과 일에서 얻어지는 보람, 경제적인 만족까지 이룰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함인식 약사의 설명이다. “어떤 친구는 치대를 준비하다 약국에서 일하고 약사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어요. 또 주위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진로 상담차 약국을 방문한 경우도 있었고요. 제 주위에서 좋은 약사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복인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느낄 수 있는 제 행복이죠”
사실 함 약사가 느끼는 이런 소박한 행복 뒤에는 함 약사도 모르는 공감 능력이 있다. 직원 개개인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하고 될 수 있으면 행복해 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마음이 상대의 마음을 녹이고 함 약사를 닮아가려는 마음까지 생기게 했다.
테크니션으로 일하다 약대를 진학하고 다시 풀러튼약국에서 일하고 있는 릴리 손 약사는 함 약사를 가장 기댈 수 있는 삶의 멘토라고 말한다. 직원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생각해 주는 함 약사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릴리 손 약사는 “항상 가족처럼 모든 것을 챙겨 주셔서 좋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직원들의 미래를 위해 도전을 주고 용기를 주시는 거여요. 경영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 직원의 미래를 위해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직원들 중 대학원을 진학한 직원들이 많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올해 12월 약대 입학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데니 한 씨는 “진로에 대해 걱정하다 아는 분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어요. 일하면서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테크니션 자격도 취득했고요. 약사가 되어가려고 하나하나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앞으로 달리다 바뀐 시선
오렌지카운티에서 약사로만 30여 년을 살아 온 함인식 약사가 약국을 경영한 것은 풀러튼약국이 처음이 아니다. 약대를 졸업한 후 애나하임에서 처음 약국을 경영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그때는 지금의 풀러튼약국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약국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함인식 약사의 기억이다. “1975년 15살 때 이민 왔어요. 그때는 참 힘들었어요. 언어도 제대로 안 됐고, 모든 것이 부족했었어요. 맏이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약대에 입학했어요. 가족들 중에는 처음 약대를 가게 된 거죠”
그리고 함 약사는 약사의 길을 충실히 걸었다. 그때도 지금도 열정적이었다. 그러던 중 함 약사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생겼다. 운동을 좋아해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함 약사의 건강에 불현듯 빨간불이 켜졌다. 일하면서 간혹 느끼는 어지러움이 시작이었다. 전부터 몸이 자주 부었지만 무시했다. 병원에 가는 것보다 운동하러 가는 것이 더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결국 아는 의사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아는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았어요. 혈압을 쟀더니 200이 넘더라고요. 당시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했어요. 그거고 나서 한 달 후에나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를 받은 날 신장기능이 10% 남았다고 들었어요”
날벼락과 같았다. 날마다 열심히 일하고 기회만 생기면 뛰고 땀 흘렸다. 고등학생 때부터 운동으로 다져온 몸이라 작은 체구지만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신장기능이 10%만 남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결국 친동생으로부터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했다. 남에게 생명을 빚진 것이다. 그리고 약국을 5년 동안 쉬었다. 쉬면서 치료를 받는 기간 함 약사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픔을 알게 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를 봐야 한다는 시각도 생겼다.
“아프고 나서 환자들에 대한 공감이 생겼어요. 특히 투석을 해야하는 환자들을 보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들어요. 약국을 다시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런 생각 생각들을 하나하나 반영해 보고 시험해 보고 있어요”
함인식 약사의 마음이 통했다. 풀러튼약국을 열고 3년 후부터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꾸준히 매년 늘어갔다. 코로나19로 어려웠을 때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함 약사의 공감이 계속해서 약국을 찾게 만드는 힘이 됐다.
“제가 살면서 제일 후회스러운 것은 건강에 너무 자신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젊은 청년이라도 기회가 되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해요. 만일 내가 그때 너무 자신하지 않고 검사만 일찍 받았어도 신장을 기증받아야 할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건강한 다른 분들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플러튼약국을 경영하는 함인식 약사의 또 다른 공감이다.
- 이전글사람의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바로 잡는 – 조이척추신경병원 23.02.21
- 다음글김진세 내과/통증/스포츠의학 전문의, 부설 유니케어 수술센터 갖추어 23.01.2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