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비지니스] QT Golden Market Place 토마스 윈 쿱타이 회장 - 한인타운 깊숙이 들어선 베트남 푸드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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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아닌 푸드코트로 변신 월남국수 월남커피 착한가격에 한인밴더와 주민들의 참여 기대해
오렌지카운티 K-Town중심인 가든그로브 블러버드 선상 브룩허스트 길 인근에 대형 베트남 마켓플레이스가 세워졌다. 오랜 건축공사를 끝내고 내건 간판이 QT Golden Market Place다. 코비드 팬데믹으로 예정보다 두 배의 시간을 소요한 끝에 마침내 문을 연 푸드코트의 토마스 윈 쿱타이 회장을 본보 윤우경 대표가 직접 취재했다. |

QT Home Shopping Section 앞에서
12살 소년은 보트피난민으로 가족들과 함께 고국을 등지게 되었다. 어린 소년에겐 나라를 잃은 슬픔보다 태어나 자란 집과 친구들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버거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근 50여년이 지난 오늘 그 소년은 1975년 4월의 그 날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는 중후한 중년이 되어 오렌지카운티 한인들의 중심지역인 가든그로브길, 한인회관 바로 옆에 대형 매장을 개장한 QT Golden Market Place 의 토마스 윈 쿱타이 회장이다. 나이를 가늠 할 수 없는 함박 웃음이 가득한 쿱타이 회장의 모습에선 곧 예순의 나이가 도무지 읽히지 않는다.
그 뿐 아니다. 쿱타이 회장은 오렌지카운티 지역 베트남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24시간 TV방송과 라디오 방송사도 운영하고 있다. 28년 전 부터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건 TV토크쇼를 진행하는 쇼호스트 이기도 하며106.1FM에서는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오후4시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토마스 회장은 패망하는 조국 베트남을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이 미국령인 괌이었고 몇 개월을 난민촌에서 지내다가 샌디에고 피난민 캠프 군사기지로 옮겨오게 되었으며 몇 개월 뒤에는 루터런교회의 스폰서를 받아 켄사스 토피카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성장하게 된다.
독실한 불교신자였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게 했고 교회의 적극적인 후원 가운데 성경을 배우고 주일학교에 나가면서 온 가족이 개종 하기에 이르렀다.
베트남에서 치과의사였던 아버지는 단 한마디의 영어도 할 수 없었지만 아내와 다섯명의 자녀를 위해 일선에 나섰다. 교회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단다. 치공이었다. 말은 할 필요가 없었고 주문이 들어오는대로 손으로 만들기만 하면 됐었다.
말을 할 줄 모르니 배고플때면 손으로 입을 가르켜 몸짓으로 소통했다. 부모님들의 고생은 말도 못했다. 온 가족이 그리했고 언어는 부족해도 사업수완이 있던 어머니의 노고도 컷다.
빈손으로 시작한 난민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정은 다른 난민들에 비해 여유있는 삶이었다며 감사할 뿐이라고 고백한다.
가든그로브 블러버드에서 바라본 QT Golden Market Place 전경
일문답이다.
윤: 큐티 골든 마켓플레이스의 위치가 의미있다. 한인타운 중심이다. 왜 이곳 인가?
쿱: “베트남 시장을 확대하고 싶었다. 한인타운을 겨냥했다기 보다는 가능한 장소가 있었고 요즘은 K-문화가 대세 아닌가? 오징어게임이 에미어워드 6관왕이 되는 것만 봐도 대세임은 확실하다.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장소였다. 과거에는 대형 마켓으로 한인들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지만 이제 한인 마켓들은 그 영역을 주류를 대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 방향을 따라 베트남인들도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고 본다. 설렁탕 집이나 순두부식당에 들어가 보라. 저녁시간이면 대부분 고객들은 베트남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지 않은가? 한인들 역시 월남 국수와 월남 커피를 상당히 선호하기 때문에 베트남 푸드코트를 한인타운으로 옮겨온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월남 사람들은 늦게까지 파티하고 노는 걸 좋아한다. 집으로 가기전에 뜨거운 국물 먹는걸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24시간 영업하는 순두부 집은 정말 인기 만점이다. 한밤중에 가보라. 손님 중 절반 가까이가 베트남 사람들이다. 한인들이 베트남 마켓에 관심을 가진다면 성공은 보장된다고 믿는다.”
지금 이 장소는 과거 1970년대 한인 최초 대형마켓인 경동마켓이 자리잡고 있어서 사실상 오렌지카운티 한인타운의 최초 기지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도레미마켓, 한남체인등이 영업했었고 건물 옆으로 몇 년 전 한인회관이 건립 된 한인타운의 심장 로케이션이다.
Market Place 운영 파트너이며 CFO이며 장래를 약속한 하나씨와 함께
윤: 마켓이 아니고 푸드코트 개념이라 했다. 어떤 상점들이 들어와 있는가?
쿱: “한인들이 좋아하는 월남국수 Pho 집이 있고 진한 향기가 가득한 커피샵, 독특한 아바카도와 두리안 같은 열대과일로 만든 베트남 스타일 쥬스 집도 있다. 샌드위치샵, 치킨집, 스시집도 있으며 소망이 있다면 한국의 대표적 음식이고 베트남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한국 순두부 집이 추가로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주 좋은 로케이션이 남아있다. 한국 상점이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 부엌도 크고 렌트도 저렴하다. 많이 알려달라. “ 8시30분 부터 밤 10시까지 개장한다.
실내전경
윤: 여기까지 성공의 길로 오는 길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여정이었나?
쿱: “맞다. 쉽지 않았다. 말도 모르고 문화도 정말 달랐으며 나라를 잃었다는 슬픔이 우리를 감쌀 틈도 없었다. 빈손으로 보트를 타고 몇 날 며칠 만에 도착한 곳이 괌이었고 계속 떠돌아 다녔으니 상상해 보라. 맨 손으로 일군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의사라 되려고 캘스테이트를 거쳐UCLA로 편입해서 바이오를 공부하다가 중도하차했다. 사업을 했는데 오렌지카운티 지역에서 십수년간 나이트클럽도 운영했고 식당도 했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큰 보람이라면 파운틴밸리 최초의 퍼포밍 아트센터를 건립한 일이다.
음향시스템 매장에 마련된 간이 스테이지에서
윤: 퍼포밍 아트센터를 건립했다니 대단하다. 좀더 설명해 달라. 연주활동도 했다고 들었다.
쿱: “당시 리갈 시네마 극장을 재건축해서 파운틴밸리 시 최초의 퍼포밍 아트센터를 건립한거다. 브룩허스트와 에딘저 교차 부근에 있었는데 무려 천오백명 수용이 가능한 커다란 극장이었다. 당시에는 정말 많은 다양한 행사들을 수용했는데 참으로 보람된 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안식구들은 모두 뮤지션이다. 난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기타도 했도 키보드도 했는데 가족 모두가 각각 악기를 다룰 줄 알았기 때문에 미주를 돌면서 밴드 활동도 했다. 메이봉풍 밴드였고 아리조나, 텍사스 등지를 돌면서 연주활동을 했다. 행사떄 마다 2천명 정도는 운집했다. 내가 퍼포밍아트센터에 관심을 깊이 가진것은 뮤지컬에 대한 관심때문이기도 했다. 제작에도 관심이 컷기때문에 가능했다.”
매장을 방문한 손님과 함께
윤: TV방송에서 토크쇼와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쿱: “어쩌면 내가 TV방송, 라디오 방송을 계속하는 것도 음악을 비롯한 예술과 그 소통채널인 미디어를 향한 관심사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내 라디오 방송은 106.3FM에서 방송되는데 약 5십만명이 청취하며 유투브 채널 구독자와 TV시청자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오래전 미주복음방송이 AM1190채널을 구입하기 전에는 복음방송이 끝난 후 베트남어로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서 내가 운영하는 홈쇼핑 프로그램도 영향력이 크다. 한국산 제품에 베트남 고객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한인벤더들도 이 점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겠나?”
윤: 지금의 심정과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쿱: “물론 힘든 인생이었지만 돌아보면 우리 가정은 참 행운이었다. 행복한 삶이 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그 당시는 잘 몰랐으나 참 고맙고 우리 부모님의 일생 부터 생각한다면 감사함 뿐이다. 인생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는것 아니겠는가? 문제 앞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가가 중요한 것일 텐데 절망이 가득했던 시절에도 앞만 바라보면 나아가주신 부모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9십대가 되신 노령이지만 여전하신 두 분의 건강이 감사하고 지금 내게 허락된 자녀들로 인해도 기쁨이 크다. 한 아이는 지금 의사가 됐고 다른 두 아이는 엔지니어가 됐다. US데비스, 샌디에고, 산타바바라에서 공부들을 했다.”
윤: 바로 이 장소에서 9월말부터 10월 초까지 코리안페스티벌이 열린다. 무엇을 기대하며 어떻게 협조하고 있는가?
쿱: “알고 있다. 기대하는 바가 크다. 2021년 9월에 이 마켓플레이스를 개장했지만 한인사회를 향한 전격적인 홍보는 아직 하지 못했는데 이번 인터뷰를 시작으로 많은 소통이 생기길 기대한다. 축제에 오시는 한인을 포한한 베트남인, 다민족들에게 이 마켓플레이스를 전격적으로 알리고 더 많은 관심이 생기길 기대한다.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정철승회장과도 친밀한 관계로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윤: QT Golden Market Place의 QT는 무슨 뜻인가?
쿱: “쿱타이의 머릿글인 QT를 땄다. 그러나 여러 뜻을 포함한다. Quite Time의 준말로 조용하고 좋은 시간이라는 뜻이다. 또한 모든이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뜻도 포함됐다. 여기 푸드코트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라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의 QT는 조용히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라는데 그런면에서 이 이름은 의미있는 이름이 아니겠는가?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면 [뉴스매거진]사람과 사회가 배트남 사회와 한인 사회의 좋은 가교가 되어주길 바란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선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첫걸음, 베트남사회와 한인사회 관계의 시작에 통로가 되어달라.”
인터뷰를 마치며
지금 이 장소는 과거 1970년대 한인 최초 대형마켓인 경동마켓이 자리잡고 있어서 사실상 오렌지카운티 한인타운의 최초 기지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도레미마켓, 한남체인등이 영업했었고 건물 옆으로 몇 년 전 한인회관이 건립 된 한인타운의 심장 로케이션이다.
마침 매장내에서 식사 중이던 2명의 한인 여성을 만났다. 요즘 음식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데 이곳은 여전히 착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넓직한 좌석들이 많아서 오래동안 대화할 수 있는 장소로는 적격이라며 다른 한인들도 많이 방문하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게다가 한인제품과 음식에 관심이 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장소라도 한인벤더들에게 적격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들은 베트남 사회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와 문화가 서로 소통하는 자리였음이 분명했다.
윤우경 기자 pnsnewsdes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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