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비지니스] 꿀약국 – 그녀들의 가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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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약학박사가 일구어가는 ‘이웃사랑’ 터전
꿀약국에 오면 행복해진다. 약국에 들어서면 밤새 앓고 난 환자가 건강해진 몸으로 상쾌한 아침을 맞는 듯한 가볍고 밝은 기분이 든다. 깔끔하게 정돈된 약국 내부와 하루종일 가득 차 있는 햇살이 한몫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찬 두 명의 미인 약사들에게서 품어져 나온 젊음이 약국을 찾는 이들을 행복에 젖어들게 한다. 약국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긍정의 파워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꿀약국은 안젤라 권 약사와 로렌 민 약사, 두 여자가 만들어 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다.
꿀약국 – 가면 행복하다
오렌지카운티 라팔마, 코요테 강가에 있는 쇼핑몰에는 한인들이 가득하다. 특별히 한인타운으로 알려진 곳도 아닌데 한인들이 많다. 그만큼 인근 한인들에게 잘 알려진 몰이다. 몰 한쪽 모퉁이 마련된 꿀약국. 옆만 지나도 깔끔하게 단정된 외관에서 이름처럼 단내가 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만 부드러운 재즈의 선율에 따라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반긴다.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곳인 만큼 밝고 기운차다. 음악이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커다란 화분들 사이에 마련된 작고 아담한 쉼터까지…, 향기 좋은 차 한 잔을 두고 정겨운 이와 수다를 떨고 싶은 곳이다. 간간이 들리는 티 없는 젊은 웃음까지 앉아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로렌 민 약사의 말이다. “많은 분들이 저희 약국에 오면 즐겁고 행복하다고 하세요. 저희도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젊어서 그 기운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나 봐요. 그리고 안젤라와 오랫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서 그런지 친절하게 인사하고 밝게 대화하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어요.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항상 그렇게 하다 보니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상큼한 웃음로 인사를 건내는 약국 식구들. 거기에 다른 약국들과 또 하나 다른 것은 약 내부다.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비처방약들 대신 한쪽 벽면엔 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 다른 쪽에는 허브를 주원료로 하는 건강보조제들이 줄을 맞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저것 팔아보겠다고 준비해 둔 것이 아니다. 여기에도 꿀약국만의 사연이 있다. 약사이면서도 약보다 음식을 통해, 또 화학적인 처방약보다는 자연이 만들어 낸 허브를 통해 건강을 지켜갔으면 하는 올곧은 고집이다.
안젤라 권 약사의 설명이다. “꿀약국인데 꿀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장난처럼 물어 오는 질문에 꿀을 가져다 둬야겠다는 생각에서 꿀을 가지고 왔는데 알고 보니 꿀에 좋은 영양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좋은 꿀이 뭐가 있나 찾아보고 여기저기서 선별해 진열해 뒀어요”
허브가 들어있는 건강보조제를 함께 진열해 둔 것은 오랫동안 처방약을 먹어 온 사람들의 몸에서 빠져나가기 쉬운 미네랄이나 비타민 등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뇨병약을 오래 먹은 사람은 비티민B12가 빠져나가기 쉽다. 고지혈증약은 코엔자임Q10, 고혈압약은 비타민B1이 빠져나가기 쉽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또 다른 처방약을 먹기보다 천연 허브로 만든 보조제를 먹는 것이 몸에 무리를 덜 준다는 생각에서다.
CVS나 월그린 등 대형 약국들은 물론 월마트나 타겟, 랄프스 등에서 보충제들을 비상약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다. 꿀약국에 진열되어 있는 허브 제품들은 마트를 가서 따로 구입해서 먹으라고 하는 것보다는 약을 받아 가면서 함께 구입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빼먹지 않고 챙길 수 있는 방법이기에 애써 만들어 둔 배려다.
꿀약국 – 서로 보완하며 살다
배려와 편안함이 묻어나는 공간 뒤편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강물 하류의 잔잔한 수면과 달리 그 밑에 흐르는 거대한 물살과 같다. 약의 용량, 종류 등이 정확하지 않으면 환자들의 건강에 바로 영향을 주기에 일할 때만큼은 긴장을 늦추지 않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깊고 무겁다.
꿀약국의 안과 밖의 이해가 가면서도 이질적인 분위기는 정확한 역할 분담에서 온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보완하고 서로에게 배운다는 생각들이 전체 식구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틀은 일종의 틀을 가지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수문장들처럼 서 있는 두 약사들이 있고 그 뒤로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직원들. 긴 설명이나 토론도 없이 자기가 맡은 일에만 집중한다. 컨베이어 시스템의 벨트가 한 바퀴 돌면 완성된 제품이 나오듯 결과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안과 밖을 수시로 움직이면서 전체를 조율해 가는 벤자민 유 매니저가 있다. 꿀약국에서 가장 연장자이면서 두 약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두 주춧돌을 자연스럽게 감싸 안고 있는 그루터기 같은 존재다.
“2000년 1월 쯤부터 꿀약국에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한인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경험이 꿀약국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 좋게 일합니다. 한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효과적인지 등을 조언하기도 하고요. 약사님들과 서로 보완해 가는 거죠” 밴자민 유 매니저의 말이다.
젊은 1.5세의 두 약사들이 주류사회에서 공부하고 경쟁하고 주류를 배울 때 유 매니저는 한인 사회에서 잔뼈가 굵었다. 두 젊은이들이 가정과 교회에서만 한인사회를 배웠다면 유 매니저는 현장에서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메꿔 완벽한 꿀약국의 그림을 만들어 가는 주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해 있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약국들이 거의 다 친절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가족과 같이 환자들을 케어해 주고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두 약사들 모두 박사학위를 받은 약학박사들입니다. 약에 대한 전문지식이 많다 보니 가끔은 병원에서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병원과 관계도 좋아지고 환자에 대해,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지는 거죠” 밴자민 유 매니저가 생각하는 꿀약국의 특징이다.
꿀약국 – 따로 따로 살다
꿀약국의 두 주춧돌인 안젤라 권 약사와 로렌 민 약사는 절친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정을 키워왔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가와 친구가 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절친이 됐다.
다른 환경, 다른 삶의 또아리에서 자란 두 사람. 이들 둘에게는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끈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함께 울며 웃으며 부대끼며 살아왔다는 점과 약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다. 이 두 가지가 지금 두 사람을 꿀약국이라는 공간에 같이 있게 만들었다.
로렌 민 약사의 말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약사가 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살 때 동네 약국에 갔더니 약사님이 강아지를 데리고 출근하시는 거여요. 그걸보고 약사가 되면 강아지를 데리고 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부러웠고 그 부러움이 막연한 동경이 됐고 성장하면서 직업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거기에 또 하나 도화선처럼 작용한 것이 있다. 친구 안젤라 권 약사가 먼저 콜로라도약대에 진학한 것이다. 부모를 따라 12살 때 이민와 콜로라도에 정착한 민 약사. 같은 고등학교 친구이자 교회 친구인 권 약사의 약대 입학은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한국에서 이민 올 때 한 학년 낮춰서 입학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일 년 동안 일본에 어학연수를 다왔고요.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2년 늦게 졸업했어요. 안젤라가 먼저 약대에 입학하고 저도 진로를 고민하던 중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약사가 생각났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이민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다른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나도 크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지 하던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안젤라 권 약사 역시 남을 돕고 살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친구의 선택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고민에서 진로를 선택했다. 권 약사는 어렸을 때부터 의료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고 그 지식으로 남을 도우면서 살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구체적인 진로를 고민하면서 의료분야에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았다. 다양했다. 의대, 치대, 약대 … 권 약사는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또 당시 상황에서 보다 빨리 사회에 안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안젤라 권 약사는 말이다. “어느 정도 안정적일 수 있는지 현실적인 면도 고려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꿈도 고려했어요. 그리고 목표한 선까지 도달하기 위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생각했고요. 그런 조건들을 감안했을 때 가장 적절한 직업이 약사라는 것을 알았어요”
권 약사는 그 후 일사천리로 목표를 향해 달렸다. 공부하면 할수록 약학 안에도 수많은 분야가 있었다. 더 공부하고 더 배우고 싶었다. 그런 열정과 궁금증이 한인들에게 낯선 임상서비스를 선택하게 했다. 환자의 몸에 가장 무리를 덜 주고 병을 치료하는데 가장 적합한 약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분야다. 약의 용량이 그 사람에게 맞는지 봐야하고 과거에 먹었던 약들과 현재 약들이 몸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를 예측해야 하는 분야다. 오랫동안 처방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선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절차다.
꿀약국 – 또 같이 살다
안젤라 권 약사는 콜로라도에 있는 카이저에서 약학 임상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처방한 약을 검토하고 환자의 과거 병력과 복용해 왔던 약을 확인한 후 다시 주치의와 함께 의견을 나눈 후 환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조언했다.
“한인들은 이 부분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사실 메디컬을 쓰시는 어르신들은 이 부분도 보험에서 커버되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쯤은 확인을 받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제 지식을 통해 한인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안젤라 권 약사의 말이다.
권 약사가 독특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만들어 갈 때 로렌 민 약사도 늦었지만 같은 목표를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록 절친에 비해 대학 입학 시기는 늦었지만 혼신을 다해 공부했다. 그녀 역시 박사학위를 받고 전국 약국 체인점인 ‘라이드 에이드’ 지점 매니저로 당당하게 사회에 나섰다.
민 약사의 말이다. “라이드 에이드에서 일하면서 약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어떤 과정으로 소비자에 전달되는지 많이 배웠어요. 그렇게 소망하던 분야에서 일할 수 있어 기뻤어요. 그런데 한가지 저를 힘들어 하는게 있었어요.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거였어요. 그 점에는 항상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두 절친이 약사를 하겠다는 마음 한쪽에는 늘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빚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현실의 벽을 느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늘 갈증이 났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권 약사의 말이다. “하루는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무거운 마음에 로렌과 통화를 하던 중 자기도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거여요. 서로 상처받은 것을 이야기하다 ‘아 이젠 때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소년 때부터 남을 돕겠다는 꿈을 꾸던 두 친구는 그날의 어려움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고 여겨졌다. 둘이 같은 시기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때부터 행동에 옮겼다. 디데이를 잡고 약국을 창업할 장소를 물색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있었던 민 약사가 앞장섰다. 콜로라도에 있던 권 약사도 주말이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당시 식구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어요. 보나마나 말릴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탄탄한 직장을 뒤로하고 고생길이 훤한 창업을 왜 하냐는 것이죠. 하지만 로렌과 저는 꿈을 이뤄간다는 설레임에 피곤한 줄 모르고 약국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2019년. 두 절친 약사는 지금의 자리에 꿀약국 간판을 내걸었다. 샌디에이고부터 LA까지 한인들이 몰리는 곳이라는 안 다녀 본 곳이 없었다. 처음부터 한인들이 목적이었다. 자유롭게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에 비해 한인들이 누리는 혜택이 너무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돕고 싶어서였다. 꿀약국이라는 이름에도 이런 그녀들의 바람이 그대로 녹아있다.
민 약사의 설명이다. “신명기 11장 8절부터 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어요. 저희는 하나님께서 저희 마음속에 자라게 하신 꿈이 약국을 통해 눈앞에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가나안은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었고 그곳에는 항상 젖과 꿀이 흐른다고 배웠어요. 그래서 ‘젖과 꿀 약국’이라고 이름을 등록했고 이를 한 자로 줄여 꿀약국이라고 이름을 만들었어요”
처음 약국을 내고 한동안 두 사람이 약을 배달했다. 낯이면 약국을 지키고 조금 이른 퇴근을 하며 약을 전달했다. 약국을 찾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운전이 어려운 어르신들이기에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없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그렇게 시작한 임시방편이 열린 마음을 지닌 두 약사를 더 크게 성장시켰다.
약을 배달할 때 만나는 사람들,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 상대를 더 많이 알게 됐다. 한국인들이 지닌 뭔지 모르는 ‘정’이 오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정적으로 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약국을 시작한 것이 너무 좋다는 행복감에 젖었다.
권 약사의 바람이다. “제가 살아가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커뮤니티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동기가 되요. 지금은 비록 약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약국이)더 안정되고 커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약으로 말고 음식과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어요. 또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도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소망… 같은 거여요.” 꿀 약국의 또 다른 주춧돌인 로렌 민 약사의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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