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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사의 느리게보는세상] 서부 해안의 낭만과 멋, 그리고 여유가 담긴 ‘캠브리아’

작성자 : 사람과사회 작성일 :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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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가주 작은 해안 마을
자연 속 여유의 해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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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스칼리니 랜치로 내려왔다. 본래 이 지역은 부동산 개발자들에 의해 대규모 단지가 들어설 뻔했다. 주민들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여 연대하기 시작했고 결국 피스칼리니 랜치는 공공의 소유물로 남게되어 지금의 모습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집콕 방콕으로 한껏 움츠러들었다. 백신이 어느 정도 공급되고 있는 요즘, 아침 저녁 바람은 선선해도 봄은 완연하다. 

허리도 펴고 마음도 펼쳐보고 하늘도 한번 올려다 볼 일이다. 멀리 갈 수 없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여행지다. 오렌지카운티를 

중심으로 남과 북 어디를 향해 떠나도 전 세계 관광객들이 꿈에도 그릴 ‘미국서부지역 여행!’.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동네라니! 

창간호 첫 여행지로 지난달 다녀온 중가주 작은 해안 마을 ‘캠브리아’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로컬 매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진 캠브리아. 저녁을 먹으며 선셋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은연중 늑장 부린 출발이었다. 이번 만큼은 “책 한 권 달랑 들고 가는 휴식을 위한 여행”을 작정했다. 한 낮의 프리웨이는 여유로왔다. 캘리의 악명높은 교통체증은 흔적도 없고 도심을 벗어나니 푸른 하늘아래 쭈욱 펼쳐진 벌판위에 길게 드러누운 프리웨이는 집안에 묶여있던 답답함을 단번에 풀어주었다. 지난해 화려했던 야생화를 떠올리며 눈을 돌려 찾았지만 봄은 아직 오고 있는 중 인듯 엷은 초록만 가득했다. 눈에 뜨이는 곳곳이 모두 유혹이 되었다. 



책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곳


 어바인에서 405번을 타니 헌팅턴비치, 롱비치, 산타모니카 비치가 연달아 나타나고 그럴때 마다 내려서 둘고 보고 싶었다. 산타바바라와 솔뱅,  피스모비치를 지날땐 젊은 시절 아이들과 바삐 들렀었던 기억이 떠올라 다음번엔 꼭 이곳을 목적으로 다시 오고자 마음 먹었다. 특히 피스모에서 조개를 잡고 ATV를 타다 죽을 뻔했던 기억에선 혼자 웃음이 나기도 했다. 기아 바꿀줄을 몰랐기에 언덕을 오르다 ATV가 뒤집어 지면서 생긴 불상사였다. 며칠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얼굴과 가슴에 타박상으로 멍이 심해서 한동안 폭력가정의 오해를 받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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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둔덕과 평원의 연속인 세인 루이스 오비스포를 지나면서 하이웨이 1으로 바꿔타고 나니 다시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덧 태양은 정점을 지나 서쪽 바다로 기울기 시작했고 윈저블러버드에서 내려 문스톤비치 드라이브로 방향을 꺽으니 바람결을 따라 드러누운 해송이 한 두 그루씩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문스톤비치는 캠브리아의 중심을 이룬다. 아래로는 여러 개의 하이킹 트레일이 있는 피스칼리니 랜치가 있고 북쪽으로는 레핑웰랜딩 공원이 있으며 2마일 정도 해안길 동쪽에는 중소형 호텔과 랜치들이 십여 곳, 독특한 분위기의 레스토랑들이 너댓개 있고 이차선 길을 건너면 해안선과 평행으로 보드워크트레일이 있어서 아침 저녁 바닷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 몇 장 펼쳐 읽기에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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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석양이 매혹적인 곳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 하고 짐을 풀고나니 태양은 하루일과를 정리하듯 금빛을 머금기 시작했고 우린 서둘러 방을 빠져 나와 길을 건넜다. 보드워크는 잘 짜여져 있었고 시간이 이미 오랜듯 자연과도 잘 어우러져 있었다. 트레일을 따라 노란 야생화들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피었고 사이사이 풀잎 틈새를 다람쥐며 도마뱀, 토끼들이 뛰어다닌다. 펜대믹으로 여행객들이 대폭 줄기도 했으려니와, 이 작은 마을은 어차피 한가할 주 중이었다. 이렇게 한적할 줄 알았으면 바닷가가 바로 내다보이는 이층 방으로 예약을 할 걸 아쉬웠다. 옮기려니 바다가 보이는 방들은 주중이어도 이미 예약 만료다.


 산이든 바다든 어느 곳을 여행해도 일몰과 일출은 반드시 보려는 편이다. 때마다 저마다 다른 모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문스톤비치 쪽으로 걸으면서 석양을 기다렸다. 구름없는 맑은 하늘에서 푸른 바다 속으로 숨어드는 캠브리아의 석양은 우릴 실망시키지 않았고 황홀한 황금 햇살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이야기 소리 속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했다. 캠브리아의 첫날 저녁은 그렇게 내려 앉았고 우린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쪽 내지 쪽에서 간단하게 첫날 저녁을 먹기로 했다. 팬더믹으로 식당들은 포장(carry out only)만 가능했다. 7시에 문을 닫았다. 10분 전 도착한 우린 마지막 손님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의 하늘은 열어젖힌 루프탑(rooftop) 위로 쏟아져 내리는 별빛에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까지 더해져 여행지의 설렘을 사뭇 더했다.


 캠브리아의 둘째 날 아침엔 일찍 눈이 떠졌다. 기온차가 큰 해안가라 그런지 대부분 호텔에 갖추어진 벽난로 덕분에 약간은 건조했지만 따뜻하고 푸근한 숙면을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푸르스름한 기운이 가득한 창밖을 내다보다 바다가 궁금해서 보드워크를 걷자 나셨다. 이번엔 북쪽 레핑웰 랜딩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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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 속 맛점 


 바다는 끊임없이 하늘과 구름의 빛깔을 품으며 시시각각 변해가고 우린 순간순간 탄성과 함께 앞서거니 뒷 서거니 서로 사진을 찍으면서 북쪽을 향해 걸었다. 뜨믄뜨믄 오가는 차량과 새벽을 걸으러 나선 여행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보드워크를 벗어나 파도 가까이 바위로 내려갔다. 인적이 드물고 물 빠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뜻밖의 소리에 놀라 도망가려는 작은 게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동편 하늘 묘한 구름에 덮혀 새벽이 덜 들어선 바위 위에 언뜻 밝은 빛이 있다. 살펴보니 야광 초록빛을 발하는 말미잘 군락이 크고 작은 웅덩이 속에 펼쳐져 있었다. 크기도 제각각에 물결에 따라 살랑이는 촉수가 예뻤다. 부드러워 보였지만 만져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쌀쌀한 새벽공기에 두툼한 자켓을 덧입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챙겨 나오길 잘했다 싶었지만 태양이 높아지고 구름이 얇아지면서 곧 짐이 되어 점심 무렵 돌아오는 길엔 아예 내버리고 싶었다. 사는 일이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고 또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는 삶 말이다. 간사함에 웃음이 났다. 


 아침을 대충 건넜기에 상당히 배가 고파진 우린 호텔 근처 야외를 잘 꾸며 놓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늘과 버터에 익힌 새우요리(Shrimp Scampi)와 얇게저며 튀긴 양파를 얹은 치킨 시저드 샐러드에 시원한 아이스티는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더불어 오전 내 땀 흘린 더위를 단번에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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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리 물범 서식지


 호텔로 돌아가 잠시 쉬기로 했다. 오전부터 서쪽 바다에서 몰려오던 밀키한 구름이 점점 짙은 안개가 되어 해안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캠브리아 여행 포스팅을 올렸더니 몇몇 페친들이 캠브리아를 다녀갔다며 칭찬 일색이다. 반드시 가 볼 곳 추천에 피스칼리니 랜치 트레일을 손꼽는다. 오늘의 일몰맞이를 그곳에서 하기로 하고 아직은 여유 있음에 차를 몰고 북쪽으로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15마일 북쪽의 피에드라스 블랑카스 등대와 그 길목에 있는 코끼리 물범(Elephant Seal) 서식처. 코끼리 물범 서식처는 남가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개 서식처에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었다. 연중 무려 1만7000여 마리의 코끼리물범들이 오고 간다. 숫컷의 무게가 무려 5천 톤에 이르기도 한다니 직접 확인 하기 전에는 상상불가다. 


 이곳에서 짝을 찾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때가 되면 훌훌 떠난다. 죽은 듯 꼼짝없이 누워 간혹 지느러미 같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모래를 일으켜 온몸에 뿌리며 일광욕을 한다. 평소 같으면 수 백명씩 모여들었을 이곳, 오늘은 스무명 남짓 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원없이 물범들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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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하얀 바위 등대


 등대로 향했다. 1874년 착공되어 1875년 첫 빛을 발하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10초마다 한 번씩 불빛을 비춘다. 지금은 히스토리컬 지역으로 분류되어 예약된 관광객들의 튜어를 제공한다. 마침 코비드로 인해 우린 튜어 기회를 놓쳤고 북쪽으로 연결된 트레일을 걸어 들어가 멀찌감치 사진찍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유난히 바위들이 즐비해 서해안을 지나는 선박들에게 암석을 경고하는 등대다. 피에드라스 블랑카스는 하얀 바위라는 뜻이다.

 

 피스칼리니 랜치로 내려왔다. 본래 이 지역은 부동산 개발자들에 의해 대규모 단지가 들어설 뻔했다. 주민들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여 연대하기 시작했고 결국 피스칼리니 랜치는 공공의 소유물로 남게되어 지금의 모습이다. 


 안개가 얼마나 짙어지는지 아직 낮인데도 태양의 위치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석양을 만나기는 이미 틀렸고 정막만이 흐르는 이 트레일을 우리끼리 걸어도 안전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용기를 내기로 했다. 바람도 점점 거세져서 옷깃을 여미고 모자가 날아갈까 스카프를 덮어 묶었다. 피스칼리니 랜치 주변에는 주택가를 넘나들거나 해안가를 따르거나 아니면 언덕 방향으로 이어지는 여러개의 트레일이 있다. 우린 해안가 트레일을 선택했고 그 후로도 두 번의 선택을 했어야 했다. 서클로 연결된 트레일이 3개로 가장 긴 트레일을 택해 걸어도 2마일이 채 안된다. 바람과 어둠이 염려되어 가장 짧게 가고자 했으나 조금 더 걷고 싶은 호기심에 두번째 트레일을 선택했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땅인지 또 어디가 하늘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발끝만 보며 어슴프레 보이는 동네 불빛을 따라 행여 바람에 날릴까 움츠려 걸었다. 바람 부는 바닷가 절벽 위 벌판에 크레인 한 마리가 안개 속에 흰빛을 발하며 서 있었다. 


 아직 7시도 안된 시간이었고 아쉬웠지만 저녁식사를 위해 작은 읍내로 향했다. 국적모를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이었고 관광객들이 다 모인듯 몹시 북적였다. 그곳에서 처음 우리를 제외한 아시안을 만났다. 레스토랑 매니저였다. 그러고 보니 백인 일색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책을 펼쳤다. 정말 휴식을 위한 여행이다. 아무 계획도 없이 애씀없이 이제 뭐 할까 그냥 여기 잠깐 앉자 하며 천천히 움직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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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크 아웃 하는 이른 아침, 새벽 바다가 아까와서 다시 걸었다. 작은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하고 서둘러 내려가면서 모로베이와 아빌라 비치에 들릴까 하던 생각은 문스톤비치 뒤쪽에 보드워크를 보자마자 마음이 변해서 길가에 차를 세운채 노란 야생화가 가득 덮힌 봄길을 마음만 나비처럼 걷다가 결국 어제 밤, 아쉬웠던 피스칼리니 랜치 트레일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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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한 결정이었다. 어제밤엔 안개로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데군데 나뭇가지로 만든 이곳의 명물 벤치들마다 앉아보고 절벽끝에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날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랜치를 가운데 두고 북쪽과 남쪽에는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지은 집들이 바다를 향해 크고 작은 창문을 낸채 어우러져있었다. 피스칼리니 랜치를 공공의 장소로 남겨두려 수고한 이곳 주민들이 참으로 고마왔다. 이박삼일 책한권만 달랑 들고 떠난 이번 여행은 책은 몇장 읽지 못했지만 추억이라는 마음의 책에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돌아온 참 힐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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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브리아는 인구 6천여명의 바닷가 조용하고 예쁜 마을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이삼일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강추. 1860년경 스페인 계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고 1880년 대에는 스위스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우유와 치즈 공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농장과 광산이 발전해 가던 샌프란시스코나 샌시미온 지역으로 대량의 우유과 치즈를  배와 마차로 공급했다고 한다.  캠브리아는 허스트캐슬이나, 산 루이스 오비스포가 목적일 때 혹은 그보다 훨씬 북쪽인 빅서를 하이웨이 1을 따라 향해 갈때 그저 쓰윽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흔한 서해안 바닷가 동네로 여길 만하다.  오렌지카운티에서 5번 프리웨이로 떠나면 약 4시간 30여분, 280여 마일, 405번 프리웨이에서 101번을 타고 샌루이스 오비스포에서 1번으로 빠지는 길을 선택하면 십여마일을 줄일 수 있다. 캠브리아(Cambria, CA)에 관한 자세한 여행정보는 스마트폰에서 캘리포니아 캠브리아 앱을 다운 받으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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