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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8
    [특집] 가정의 달은 왜 5월일까? 사람과사회
    유난히 가정과 관계날 기념일이 많은 달이 바로 5월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등이 모두 5월에 집중됐다. 매년 5월 두번째 주일은 모든 미국인들이 어머니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 어머니날(Mother's Day)이 국가 기념일로 선포된 배경은 한 여성의 지극한 효심과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어머니날은 1900년대 초 안나 자비스(Anna Jarvis)라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됐다. 1905년 5월 둘째 주 일요일, 안나의 어머니인 앤 리브스 자비스(Ann Reeves Jarvis)가 세상을 떠났다. 안나는 평소 "어머니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념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던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일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1908년 5월 10일, 안나는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를 추모하는 첫 공식 예배를 열었는데 이때 그녀는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흰 카네이션 500송이를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이것이 오늘날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풍습의 기원이 되었다. 안나는 어머니날을 국가 공휴일로 만들기 위해 정계와 교계 인사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쓰며 캠페인을 벌였으며1910년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처음으로 어머니날을 공식 휴일로 선포했고, 1911년까지 거의 모든 주에서 이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마침내 1914년, 미국 의회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1914년 5월 9일, 당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대통령령(Proclamation 1268)을 통해 이를 국가 기념일로 공식 선포했다.윌슨 대통령은 이 날을 "미국 어머니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날"로 규정하고, 관공서와 가정에 성조기를 게양할 것을 권고했다.한국도 이 영향을 받아 1956년 '어머니날'을 제정했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확대 개편했다.초록이 짙어지는 계절의 여왕 5월. 우리 곁을 지켜주는 어머니 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가정의 달'이다.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온기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그렇다면 왜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하는걸까? 5월에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집중된 이유는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으로 5월 5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위해 제정했고 평생 헌신하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이며 5월 15일은 UN이 제정한 세계 가정의 날로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지정한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또한 5월 21일은 '둘(2)이 만나 하나(1)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부부의 날로 제정했다.최근 변화하는 가족,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 하겠다. 요즘 가정 모습은 1인 가구, 비혼 가족, 다문화 가족 등으로 매우 다양해 지면서 혈연이나 전통적인 가계도보다 서로를 지지하고 아끼는 '마음의 결합'이 가정의 본질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때이기다 하다.  가정의 달을 뜻깊게 보내는 법단순히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겠다. 하루 정도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겠고 아이들과 함께 편지 쓰기, 가족 신문 만들기, 혹은 가족의 역사를 담은 영화나 책을 함께 보는 활동을 추천한다. 또한 "고마워요", "사랑해요" 같은 평범하지만 강력한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것이 행복한 가정의 시작이겠다. 가족들과 함께 간단한 나들이를 위해 오렌지카운티(OC) 인근에서 2026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계획된 행사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30년 넘게 이어진 애너하임 어린이 축제 (Anaheim Children’s Festival)가 5월 16일(토) 11:00 AM – 3:00 PM에 애너하임 피어슨 공원(Pearson Park)에서 열리는데 모든 예술 체험 활동이 무료다. 가든그로브 딸기 축제 (Garden Grove Strawberry Festival)는 5월 22일(금) ~ 25일(월)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 열리는데 가든그로브 빌리지 그린 공원(Village Green Park)로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행사 중 하나로, 대규모 퍼레이드, 놀이기구, 딸기 케이크 시식 등이 진행되어 온 가족이 나들이하기 좋다. 미니어처 기차 탑승 (Miniature Train Rides)행사는 5월 17일(일) (매월 셋째 주말) 코스타 메사 페어뷰 공원(Fairview Park)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미니어처 기차를 타고 공원을 둘러볼 수 있어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인기가 높다. 가족 펀 페스티벌 & 리소스 페어 (Think Together Family Fun at the Park)는  5월 30일(토) 10:00 AM에 산타애나 칼 손튼 공원(Carl Thornton Park)에서 음식, 게임, 공예 활동과 더불어 아동 발달 정보를 제공하는 무료 가족 친화 행사가 열린다. 그외 어머니날 특별 행사 (Mother's Day Events)가 지역별로 다양하게 열리니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보자.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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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특집] 57년만 달을 향해 쏘다 … 왜 다시 달인가? 사람과사회
    달 탐사는 인류가 지구 외의 천체에 직접 발을 내딛거나 탐사선을 보내 연구하는 가장 도전적인 과학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1950년대 냉전 시대의 '우주 레이스'로 시작되어, 현재는 자원 확보와 화성 탐사를 위한 전초기지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1969년 인류가 최초로 달 표면에 족적을 남긴 첫번째 탐사가 '탐험'이었다면 이번 달 탐의 주된 목표는  '거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꼽을 수 있다. 57년전 아폴로 계획이 인류가 달에 갈 수 있음을 증명한 “일시적 방문'이었다면, 이번 아르테미스는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상주하는, 즉 '지속 가능한 정착'을 목표로 한다. 이는 인류의 활동 영역이 지구 밖으로 영구히 확장됨을 의미하는 역사적 분기점이다. 심우주 탐사를 위한 '테스트베드(Testbed)'가 될 이번 탐사의 목적지, 달은 화성으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이다. 달에서 심우주 거주 기술, 자원 채굴, 로켓 연료 생산(물 분해를 통한 수소 확보) 등을 성공시킨다면, 이는 곧 인류가 화성에 도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력을 확보했음을 역사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아르테미스(Artemis)는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이자 달의 여신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계획은 '최초의 여성 우주인'과 '최초의 유색인종 우주인'을 달 표면에 착륙시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특정 국가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우주 탐사를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로 확대한다는 사회문화적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과거 우주 경쟁이 국가 간의 자존심 대결이었다면, 아르테미스는 민간 기업(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등)과 국제적 협력(아르테미스 약정)을 기반으로 한다.이는 우주가 더 이상 정부 예산만 쓰는 곳이 아니라, '우주 경제'라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는 비즈니스의 무대가 되었음을 상징한다.즉< 아르테미스는 인류가 달을 하나의 '목적지'가 아닌, 더 먼 우주(화성)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고향(Home away from home)'이자 '항구적인 플랫폼'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달 탐사는 크게 세 시기인 초기 탐사, 아폴로 계획, 그리고 현대의 재도전으로 나뉜다.초기 탐사 (1950~6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루나 2호가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충돌)했고, 루나 3호가 달의 뒷면을 처음으로 촬영했다.아폴로 계획 (1969~1972): 미국의 NASA가 주도한 인류 최대의 프로젝트입니다.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딛는 역사적 순간을 만들었다.공백기와 재개 (1970년대 후반~현재): 한동안 주춤했던 달 탐사는 21세기 들어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여러 국가가 참여하며 다시 뜨거워졌다.다시 말해 과거의 탐사가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면, 현대의 탐사는 보다 실질적인 이유를 가진다.  달에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헬륨-3와 희토류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심우주 탐사의 전초기지: 달은 중력이 지구의 1/6에 불과해 화성 등 더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연료 보급소나 기지로 활용하기 적합하며 지구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는 '타임캡슐' 역할을 한다. 특히 달의 남극에는 얼음(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상주 기지 건설의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미국 주도의 국제 협력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Artemis) 계획으로  2020년대 중반까지 인류(최초의 여성과 유색인종 포함)를 다시 달에 보내고, 지속 가능한 상주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며 달 궤도에 건설될 우주정거장으로, 달 표면 탐사와 심우주 여행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했으며,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KPLO)**를 통해 달 착륙 후보지 탐색 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달 탐사는 초기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자존심 대결로 시작되었느데 1959년 루나 2호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충돌)했으며, 루나 3호는 최초로 달 뒷면을 촬영했고 미국의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1972년 아폴로 17호까지 총 12명의 우주인이 달 표면을 걸었다. 그러나 아폴로 계획 종료 후, 막대한 비용 문제와 정치적 관심 하락으로 인해 한동안 유인 탐사는 중단되었다. 현재 인류는 다시 달로 향하고 있다. 이번에는 단순히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주'가 목적입니다.NASA를 필두로 한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로 2020년대 중반까지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려 하며 달 궤도 정거장인 '루나 게이트웨이(Lunar Gateway)' 건설을 이루고 달 남극의 물(얼음) 자원 확인 및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달은 이제 탐사의 대상을 넘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평가받는다.우리나라도 달 탐사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는데 2022년 발사된 대한민국 최초의 달 궤도선이 있다. 현재 달 궤도를 돌며 지형 관측, 착륙 후보지 탐색, 우주 인터넷 시험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2032년경 우리 기술로 만든 로켓(차세대 발사체)을 이용해 달 착륙선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헤쳐나가야할 난관도 존재한다. 지구 자기장의 보호가 없는 달 표면은 강력한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다. 또한 월면토(Regolith)이라 불리우는 달의 먼지는 미세하고 날카로워 기계 장치를 마모시키고 우주복을 손상시킨다. 낮에는 127°C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173°C까지 떨어지는 극한 환경을 견뎌야한다. 달 탐사는 이제 국가 주도를 넘어 스페이스X나 블루 오리진 같은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접어들었다. 인류가 달에 마을을 짓고 사는 모습이 머지않은 미래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인류가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은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11호 미션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착륙 지점: 달의 '고요의 바다' (Sea of Tranquility)였고 최초의 인물은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두 번째 인물: 버즈 올드린(Buzz Aldrin) - 암스트롱에 이어 약 19분 뒤에 달 표면에 내렸다.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는 달 궤도에 머물며 사령선을 조종하여 동료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왔다.이들은 달 표면에서 약 21시간 30분 동안 머물며 암석 샘플 채취와 과학 실험 장비 설치를 마친 후, 7월 24일 무사히 지구(태평양)로 귀환했다.재미있는 사실은 인류 최초의 '인공물'이 달에 도달한 것은 1959년 소련의 루나 2호였지만, 사람이 직접 내려 탐사한 것은 아폴로 11호가 처음이다.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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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특집] 사순절! "부활절을 기다리며" 사람과사회
    믿는 사람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일년 중 가장 크게 기념하는 성탄절보다 더 중요한 절기가 바로 부활절이다. 이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날이며, 우리의 믿음은 바로 죽음-부활의 신앙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교회마다 이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사순절을 지킨다. 특별 새벽기도, 다니엘 금식기도 등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사순절 묵상을 진행한다. 올해 부활절은 4월5일이다.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가 기억할 날들을 알아보자.     (편집자 주).......................................................................................................................................................................2026년 올해 부활절은 4월6일이다. 그렇다면 부활주일은 어떻게 계산 될까. 부활절은 음력을 기준하여 해마다 다르다. 춘분 이후 만월 다음 주일이다. 부활절이 해마다 바뀌는 것을 아는 기독인들은 많다. 그런데 부활절이 언제인지 정확히 아는 기독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부활절이 모두에게 익숙한 양력 달력으로 정해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음력 달력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활절을 찾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계산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20세기에 와서야 통일된 부활절 날짜기독교가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켜 온 절기 중 가장 오래된 절기가 부활절이지만 부활절을 계산하는 방법이 통일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부활절 날짜에 대한 다툼은 2~3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들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교회와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교회로 나누어졌다.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교회는 니산월(유대인의 달력으로 태양력이며 3, 4월이다) 14일을 부활절로 고정하여 지켰다. 반면에 그레고리력은 니산월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부활절을 지켰다. 전자는 유대인의 유월절을 근거로 한 것이며,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수백 년 간 부활절 날짜로 인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로마교회가 한 발 물러서면서 논쟁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몇몇 교회에서는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율리우스력을 20세기까지 사용하던 동방정교회가 조금씩 그레고리력으로 바꾸게 되면서 부활절 날짜는 통일되었다.그레고리력에 근거한 부활절은 ‘춘분 다음에 오는 만월 다음 주일이 부활절’이다. 이를 쉽게 알기 위해서 춘분과 만월을 알아야 한다. 다행히도 춘분은 태양력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춘분은 3월 21일로 매년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다.만월(滿月)이라 함은 보름달이 되는 것을 말한다. 보름달이 되는 날을 찾기 위해서는 태음력 달력을 봐야 하는데, 이 또한 다행히 매달 15일에 보름달이 된다. 즉 춘분인 3월 21일을 찾고, 춘분 다음에 오는 음력 15일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음력 15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찾으면 되는데, 이 주일이 바로 부활절이다.부활절은 모든 기독인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날이다. 영혼의 구원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부활 소망까지 이어지는 믿음의 끈이요, 신앙고백의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기며 앞선 마음으로 준비하는 부활절이 되어야 하겠다.이제 사순절을 알아보자. 2026년 사순절은 2월 18일부터 시작된다 금년 사순절은 2월 18일에 시작된다. 사순절은 단순히 단 음식을 끊거나 가족 전통을 따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순절은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영적인 삶을 새롭게 하는 기회이다. 평생 사순절을 지켜왔든, 올해 처음 시작하든, 잠시 시간을 내어 사순절을 준비해 보기를 권한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 40일간(주일 제외)을 말하며, 부활절은 부활 주일이라고도 한다. 사순절은 종종 준비의 시간이며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이 기간은 개인적인 성찰을 통해 성금요일과 부활절을 맞이할 마음과 정신을 준비하는 시간이다.사순절 기간 동안 기념해야 할 중요한 날들재의 수요일: 2026년 2월 18일(수)재의 수요일은 사순절의 첫날이다. 이마에 검은 십자가 모양의 재가 묻어 있는 사람들을 봤을지도 모른다. 재의 수요일 예배에서 사용되는 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슬픔과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상징한다. 재의 수요일’은 ‘참회의 수요일’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불린 이유는 이날 예배에서 재(Ash)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재’는 참회와 회개, 유한성, 정화와 순수, 농경문화에서는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위한 밑거름 등을 의미한다. 재의 수요일부터 전례색은 보라색으로 바뀐다.종려주일/고난주간3월 29일은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또는 고난주일이다. 종려주일은 부활절을 1주일 앞둔 주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등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돼 있다(마 21:1-11, 막 11:1-11, 눅 19:28-38, 요 12:12-19).고난주간은 영어로 보통 Holy Week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고난(Passion)에 초점을 맞출 때는 Passion Week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난주간 다음주는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을 때, 사람들은 Palm tree 가지를 흔들며 기뻐 했다. 그날은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그 주간부터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며,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한 수난의 길을 가셨다.종려주일 다음 날부터 부활 직전까지인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는 고난주간(苦難週間, passion week)이다. ‘수난주간(受難週間)’으로도 불리는 고난주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3월 30일부터 4월 2일까지는 보라색과 붉은색, 예수께서 죽임당하신 4월 3일과 4일은 검은색이다. Palm Sunday (종려주일)는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 번째 일요일이다.  성목요일: 2026년 4월 2일(목)Maundy Thursday / Holy Thursday (세족 목요일/성목요일)은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기념하는 날로  성금요일 전날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성금요일: 2026년 4월 3일(금)4월 3일은 주님이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聖金曜日, Good Friday)로 이날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성스러운"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인류를 위한 희생이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잘못이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다음날은 일반적으로 Holy Saturday (성토요일)라 부르느데 그날이 예수님이 무덤에 머무신 날이다.부활절: 2026년 4월 5일(일)4월 5일은 부활절(復活節, Easter)이다. 2세기 중엽부터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로 자리잡은 부활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남을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는 141년 전인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을 밟았던 부활절과 날짜가 같다.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신 것을 기쁨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사순절이 40일인 이유는?성경에서 모세(출애굽기 34:28), 엘리야(열왕기상 19:8-9), 그리고 예수님(마태복음 4:1-2) 모두 40일 밤낮으로 금식하는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이 끝날 무렵, 그들은 앞으로 닥칠 도전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패턴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데서 유래됐다.고난주간은 영어로 보통 Holy Week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고난(Passion)에 초점을 맞출 때는 Passion Week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난주간 다음주는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을 때, 사람들은 Palm tree 가지를 흔들며 기뻐 했다.그날은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그 주간부터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며,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한 수난의 길을 가셨다. Palm Sunday (종려주일)는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 번째 일요일이고 Maundy Thursday / Holy Thursday (세족 목요일/성목요일)은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기념하는 날이다. Good Friday (성금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로 그 다음날은 일반적으로 Holy Saturday (성토요일)라 부르느데 그날이 예수님이 무덤에 머무신 날이다.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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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제4차 21인 차세대목회자 새벽기도회 성료 사람과사회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제4차 21인차세대목회자초청 새벽기도회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총 21일에 걸쳐 진행됐다. 이번 새벽기도회는 2022년 처음 개최 된 후 올해까지 4회째 이어지고 있다. 오렌지카운티 지역을 중심으로 개척교회, 혹은 미자립교회를 섬기고 있는 30대에서 50대까지의 차세대 목회자들 초청, 성도들이 새벽기도회를 드리며 각 강사들의 말씀을 통해 도전 받고 서로를 격려하는 취지로 마련된 후 해를 거듭할 수록 그 의미가 뚜렷해 지고 있다. 30대 회장 심상은목사가 제1차부터 3차까지 이끌었고 올해는 34대 회장 이창남 목사가 주축이 되어 OC지역 교계 기관과 협력, 함께 상생하고 서로 격려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며 영적대각성의 도전을 주는 기도회로 성장했다.올해 초청 강사는  7월28일 월 신경섭목사(어노인팅교회), 7월29일 화 제임스구목사(글로벌 비전교회), 7월30일 수 이원철 목사(LA마가교회), 7월31일 목 박은성 목사(Acts Global Church), 8월1일   금 이상훈 목사(한마음교회), 8월2일  토  김종규목사(OC제일장로교회), 8월4일 월  신형석 목사(엎드림교회), 8월5일 화 신유호목사 (예수생명교회), 8월6일 수 유인선목사(엘피스 장로 교회), 8월7일 목 백동진 목사(미러클랜드침례교회), 8월8일 금 김경목목사(어바인열린 교회), 8월9일 토 정성택 목사(얼바인중앙침례교회), 8월11일 월 박 유 목사(새빛사랑교회), 8월12일 화 송 일 목사(애나하임한인장로교회), 8월13일 수 문두진 목사(남가주임마누엘교회), 8월14일 목 신성옥 목사(재건나성교회), 8월15일 금 이사야 목사(New Start Community Church), 8월16일 토 백창호 목사(오렌지힐교회), 8월18일 월 이병열 목사(드림교회), 8월19일 화 조유진 목사(풀러톤영락교회), 8월20일 수 이찬영 목사(OC마가교회) 였다. 21일에 걸친 새벽기도회는 그 다음날 목회자세미나를 하이라이트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올해 강사로는 한기홍목사(은혜한인교회), 강준민목사(새생명비전교회), 이상명총장(프레스티지대학), 김종국총장(에반겔리아 대학)이 나섰다. 목회자 세미나는 OC교협 총무 조진용목사(바인교회)의 사회로 부회장 최국현목사(은혜와진리교회)의 대표기도가 있었고 지난 4년간 대회장으로 섬긴 한기홍목사(은혜한인교회)가 환영인사를 했다. 한 목사는 오늘날 우리가 봉착한 목회적 위기의 해법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복귀하는 것으라 믿는다면서 영적 리더는 위기를 먹고 자란다는 말 처럼, 위기는 리더를 성장 시키고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첫 강사로 나선 강준민목사(새생명비전교회)는 “목회자의 영성과 자기관리” 라는 주제로 50분간 강의했고 2강 강사인 이상명총장(프레스티지대학)은 “인공지능시대의 미래 목회와 신학과제” 라는 주제로, 3강은 선교사 출신인 김종국총장(에반겔리아대학)이 “선교적 관점에서 본 디아스포라 목회의 도전과 영적 돌파”, 그리고 마지막 강의는 한기홍목사(은혜한인교회)가 “건강한 교회, 행복한 목회자의 영성”에 대해 다루었다. 50분씩 걸친 각 강의 뒤에는 이번 새벽기도회 강사 중 3명의 목회자가 이번 기도회에 참여한 경험과 도전에 대해 간증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는 34대 교협 회장인 이창남목사(주님의손길교회)가 참가 목회자들과 함께 목회와 지역사회를 영적 각성을 위한 기도제목을 놓고 합심 기도 한 후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이번 4차 강사들은 OC교협과 교계의 돈독하고 건전한 연합과 건전한 연합 활동, 선한 영향력 등에 강한 도전을 받는다면서 8월31일 주일 저녁, 강사중 1인이었던 오렌지힐교회 백창호목사 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참석, BBQ로 저녁식사를 하고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찬양과 간증의 시간을 통해 형제가 연합하며 서로 세워져 가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내년도 21인차세대목회자 초청새벽기도회는 2026년 7월부터 시작하게 된다. 관련 문의는 OC교협으로 하면 된다. [이 게시물은 사람과사회님에 의해 2025-09-09 10:10:24 종교에서 이동 됨]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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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
    [특집] 제1회 글로벌힐링아트 청소년 에세이 대회,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 사람과사회
    1등 수상작 (Shinjung Woo 우 신정, West Ranch High School, 12th To Korean War Veteran)First,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 and sincere thanks to the 36,591 veterans who fought for my country during the Korean War. Without their sacrifices, Korea might not be a free nation today or perhaps might not even exist.   While learning about the Korean War, I came across a story of one veteran that touched my heart, and it was Ted Williams’s. I discovered that Ted Williams was not just one of the greatest baseball players in history, but also an amazing fighter pilot who risked his life in battles for freedom. It deeply moved me to know that, even though he was a world-famous athlete, he set aside a comfortable, luxurious, and recognizable life to serve his country during a perilous time.  In school classes, I was told the Korean War is sometimes called a “Forgotten War.” This was because many people in America did not know much about Korea, and also because the soldiers were not well-received when they came back home. I think that makes the sacrifices of Ted Williams and other veterans even more meaningful, because their decision was not for recognition, but for something greater—freedom and peace.  If I were in Ted Williams’s situation, choosing to go to war, I’m not sure if I could really put down all the fame and the recognition from a safe world. But he did. He made a choice that eventually led me to write an essay about him. It would have been so easy to stay in the spotlight and continue the life that all people dream about. But he did not take the easy way. This choice might have been a shock to the fans and especially painful for his loved ones. His action reminds me that freedom comes from people who are willing to give up everything for others. It also made me wonder myself, ‘Am I ready to give up everything for others?’  As a fan, if Ted Williams had not gone to war, he could have hit even more home runs and broken more records. But I believe that the war could have been way worse if veterans like him had not fought as if the land they were stepping on was their own country. Who knows? If his 39 flight missions did not exist, maybe we might have even lost the war!  Today, Korean students like me can live peacefully, study, and dream about the future because of the sacrifices of Ted Williams and other heroes. I will never forget this, and I will be ready to give up everything for others, like he did for us.   Thank you so much, Mr. Williams, and all the veterans. I will always remember you.   Sincerely ..................................................................................................................................2등 수상작 (Leere(Joy) Jang 장 이레, Sunny Hills High School)Dear American veterans of the Korean War, On June 25, 1950, war erupted on a peninsula most Americans had never seen. You crossed oceans to defend a country and a people you did not know, believing that freedom was worth the risk. Because of your courage, South Korea stands today as a thriving democracy—and my generation gets to dream freely. I’m writing to thank you. You were young—many barely older than I am now—yet you left home, family, and certainty to fight in brutal winters and unforgiving terrain. You faced fear, scarcity, and loss, and still kept moving forward. You did not fight for glory or recognition; you fought so that strangers halfway around the world could live without tyranny. That kind of selflessness is hard to comprehend—and impossible to forget. The cost you bore was immense. So many never made it home; many who did carried invisible wounds. When I study the history of those years and think about the bitter cold, the long nights, and the friends you lost, I realize how much I owe you. The Korea I see today—innovative, vibrant, and free—was built on your sacrifice. Sometimes I try to picture what your days looked like—the weight of a pack digging into your shoulders, the sting of winter wind during a long watch, a creased letter from home tucked close to your heart. The challenges I face now—exams, late buses, awkward first attempts at leadership—are small beside what you endured. But your service doesn’t make my struggles meaningless; it gives them direction. Because you stood firm, I get to grow up where a young person can speak freely, study what they love, serve their community, and dream without fear. That ordinary freedom is your extraordinary gift, and I promise to use it well. Your example challenges me. You didn’t fight so that I could live comfortably; you fought so that I could live responsibly. I want to honor you by the way I live: by working hard in my studies, standing up for what is right, and serving others who feel unseen. I will keep learning about the war you fought and share your stories with people my age who might not know them—so that your courage is remembered not just in monuments, but in our choices. Thank you for proving that ordinary people can do extraordinary things when they believe in something larger than themselves. I will carry your legacy with me and try to meet the freedom you preserved with gratitude, integrity, and service. With deepest gratitude, ..................................................................................................................................3등 수상작 (Kate Kim  케이티 김, 12th grade / Sunny Hills)  Dear Richard DeWart, I want to begin by telling you that I’m not very good at writing letters, especially lengthy ones like this. So if it’s alright with you, I’ll start by talking a bit about myself. I’m 17 years old, the same age you were when you made the brave decision to enlist in the United States Navy. Personally, I’m terrified of just about everything: bugs, the dark, heights, the ocean, public speaking, and even my mom’s mysterious, stomach-turning smoothies. So I can’t even begin to imagine how much courage it must have taken for you to make that decision. And yet, here I am, curled up with my stuffed dinosaurs, writing this letter to you about your bravery. As I sit here writing, I remember that I’m only two months away from adulthood myself. And it makes me wonder how you felt when you first entered battle at just 18 years old. Were you scared? Eager? Overwhelmed? I probably would have panicked on the spot. And maybe you were scared too. No, you probably were. It’s almost laughable to think that you weren’t scared to go into battle. And yet, reading stories about you on the Internet, I can’t help but doubt that you were. For instance, I read about how you gave your sweater to a fellow soldier after hearing him complain about the cold. I don’t think I could have done that on a battlefield where everyone must have been freezing and starving, especially when I can barely bring myself to give up the last slice of pizza to my brother. I also read that you checked on the health of the Marines every night and hoped to become a doctor someday. I want to be a doctor too. And yet I wonder: could I have really forced my exhausted, starving, and battle-weary body to check on others every single night? I’m not quite sure. As I kept reading, I came across accounts of how, despite your own injuries, you ran into the line of enemy fire to rescue your wounded comrades. At first, I couldn’t understand it. Part of me even thought you had lost your mind. But then, as I pictured myself in your shoes, I began to understand the depth of your courage and the strength it must have taken. You were wounded yourself, yet you chose to run again and again into danger to save your fellow Marines. You did not hesitate. Even as enemy fire rained down, you focused on what mattered most: saving lives. In your final act, trying to reach one more wounded Marine, you made the ultimate sacrifice. That kind of courage leaves a permanent mark on the world. You didn’t just serve; you exemplified what it means to be a healer in the midst of war. As an aspiring doctor, I can’t help but admire your dedication and selflessness. So, here are my final words to you, Hospitalman De Wert — courageous medic and true hero of the Korean War. Thank you. Your name and your sacrifice will never be forgotten. Through your bravery, you helped Kate Kim - 12th grade / Sunny Hills preserve the freedom and peace of Korea, and your legacy lives on in every medic who follows in your footsteps, and in every life saved by someone inspired by your story.Your story has made me think more deeply about what kind of doctor — and person — I want to be. With the deepest respect and gratitude,  Kate Kim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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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조선총독, '도살자' 별명답게 행동"…아펜젤러 2세의 회고 첫 공개 사람과사회
    "내 평생 세 개의 한국을 알게 되었다. 각각은 친근한 산과 시냇물, 냄새와 소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분명히 다른 국가들이었다."구한말 격변의 시기, 서울에서 태어났다.미국 감리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아버지가 머문 땅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00년 한국을 떠났으나 17년 만에 돌아와 아버지가 그러했듯 선교 활동에 나섰다.이후 아버지가 세운 학교의 교장을 맡아 20년간 수많은 인재를 키워냈다.그러나 3·1운동 1주년을 맞아 1920년 열린 학생들의 만세 운동을 문제 삼은 일제로부터 '교장으로서 도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았고, 부당하게 쫓겨났다.광복의 기쁨을 되찾은 뒤 한국에 돌아왔으나 해방 이후 격동하던 시기와 미군정, 그리고 남북이 서로 총구를 겨눈 6·25 전쟁을 지켜봐야 했다.모두 헨리 도지 아펜젤러(Henry D. Appenzeller·1889∼1953)가 겪은 삶의 순간이다.배재학당을 세운 미국인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1858∼1902)의 아들로, 격동의 한국사를 생생히 본 그의 기록이 처음으로 공개됐다.구한말부터 일제 강점, 해방 이후의 모습까지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자료다.서울 중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획한 '해방정국과 배재학당' 특별전에서 아펜젤러 2세의 '내가 겪은 세 개의 한국' 글을 최초 공개한다고 17일 밝혔다.아펜젤러 2세, 즉 도지 아펜젤러의 회고 글은 1951년 10월 부산에서 작성됐다.6·25 전쟁 당시 기독교세계봉사회의 한국 책임자로서 구호 활동에 나섰던 그는 '내 어린 시절의 한국', '일본의 한국', '해방된 한국'으로 나눠 그가 겪은 한국을 기록했다.박물관이 연합뉴스에 공개한 글 전문에는 '푸른 눈의 외국인'이 겪은 시대 상황과 역사적 순간이 생생히 담겨있다.도지 아펜젤러는 "내 어린 시절의 한국은 진정한 한국인의 나라"라고 기억한다.그는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상투를 틀고 말총 갓을 쓰고 있었다"면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머리를 자른 것은 '상당한 혁신'이라고 회상하기도 한다.고종(재위 1863∼1907)을 만났을 때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하자 왕이 크게 웃었던 기억과 제물포(인천)에서 서울을 잇는 철도 개통 등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도 많다."서울의 외국인 공동체는 낯선 관습으로 둘러싸인 사막 안에 있는 서구식 관습과 생활의 작은 오아시스였다. 그곳에서 동양과 서양의 최초 접촉이 이루어졌다."도지 아펜젤러의 시선은 '일본의 한국' 즉, 일제 강점기를 기록한 대목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1917년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온 그는 "한국의 주권이라는 환상은 1910년 8월 29일 완전한 식민지 병합으로 곧 사라졌다"며 "더 이상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었다"고 짚었다."1917년 내가 받은 첫인상은 부산 부두에서 일본인이 한국 인부를 발로 차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불쾌한 것을 참아야 하는 굴욕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이후에 보게 될 것과 경험할 것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었다."도지 아펜젤러는 1916∼1919년 조선 총독을 역임한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총독을 향해 '도살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행동했다"고 비판했다.그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과 관련해 "민간인 불량배들의 부추김을 받아 밤마다 시위대에 난입해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총검으로 찔렀다"고 증언했다.그는 "일제의 통치는 언제나 제국이 우선이고 한국인은 그다음"이라고 꼬집었다.도지 아펜젤러는 한국이 주권을 회복한 해방 정국 상황도 직접 목격했다.1946년 미 국무부 대표단과 잠시 내한한 그는 "의사당 건물(the capitol building·조선총독부 건물을 뜻함) 앞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펄럭였다"고 회상했다.그는 미소공동위원회의 신탁 통치 논의, 38선 획정 상황 등도 회고 글에 남겼다.그는 6·25 전쟁이 왜 벌어졌는지 개인적으로 생각한 내용도 솔직히 담았다."내 해석으로는 북한의 공산당이 남한의 상황이 너무 좋아지고 있음을 깨닫고 곧바로 공격하지 않으면 남한이 군사·산업 모두에서 너무 강해질 것이라 판단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그는 "우리가 보는 해방 한국은 모순과 혼란이 뒤섞인 요동치는 덩어리"라면서도 요한복음의 한 구절을 인용해 종교적 신념을 드러내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가족들이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영문으로 작성된 이 글은 2008년 이후 수장고에 보관돼오다 최근 조사·연구를 거쳐 빛을 보게 됐다. 도지 아펜젤러가 글을 쓰고, 가족들이 1991년 회의를 거쳐 편집했다고 한다.이번 전시에서는 배재학당의 60년 역사와 교육 활동을 정리한 '배재환갑'(Pai Chai's Whangap), 배재 학생들의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운동 진술서 등도 함께 볼 수 있다.내년 8월 14일까지.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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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6.25전쟁 발발 75주년 “가장 소름 끼치는 충돌…” 사람과사회
    소련을 지배하던 공산 진영의 맹주 스탈린은 늙어가면서 의심만 늘었지 총기(聰氣)는 잃어가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죽음 덕에 세계 최강국 권좌에 오른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에 견줘 개인적 매력, 전략적 유연성, 세계문제에 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원의원을 거쳐 부통령 자리에 오른 그는 루스벨트가 전적으로 관여한 대외문제에 참여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외교 문외한이었다.중국에서 장제스의 국민당을 가까스로 몰아내고 막 집권에 성공한 마오쩌둥은 한국보단 대만 문제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 하면서도 미국과 소련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남과 북에서 각각 정적들을 제거하고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 골몰했다.한국을 둘러싼 주변국 정상과 한국 내 정치인들의 셈법은 이처럼 저마다 달랐고, 나름대로 복잡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세계사적 관점에서 한반도 상황은 어디까지나 변방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에 불과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최근 출간된 '냉전'(서해문집)은 냉전의 관점에서 20세기 역사를 정리한 두꺼운 역사서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 미국 예일대 역사학·글로벌문제 담당 교수는 식민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1890년대부터 1991년 소련의 해체까지 100년의 역사를 냉전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저자는 냉전을 "미국과 러시아가 점차 국제적 사명감을 갖춘 강력한 제국으로 전환한 과정"이자 "자본주의와 그 비판자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첨예화한 과정"으로 간주한다.1천쪽에 달하는 장대한 책에서 가장 눈길 끄는 부분은 한국전쟁을 다룬 챕터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그 여파는 아마 냉전에서 단일 사건으로 가장 커다란 재앙"이라며 "한국인 사이의 격렬한 이념 대립과 초강대국의 개입을 가능케 한 냉전의 틀이 낳은 전쟁"으로 한국전쟁을 규정한다.아울러 "한국전쟁은 가장 소름 끼치는 냉전의 충돌을 상징"하며 "냉전을 전 지구적 규모로 강화하고 군사화했다"고 정의한다. 저자는 전쟁에 따른 한반도 분단 상황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미·소간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등 한국전쟁이 커다란 후폭풍을 일으켰다고 진단한다.그러나 한국전쟁의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이 같은 거대한 혼란을 야기한 전쟁을 치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고 강조한다.책에 따르면 미국은 1947년 중반까지 모스크바와 합의해 통일과 총선거를 위한 길을 닦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반도 분할이 굳어진 건 "이승만과 김일성이 자기의 통치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어떤 계획에도 완강히 동의하지 않았고, 1940년대 말 다른 곳에서 냉전이 격화됐기 때문"이었다.김일성과 이승만은 모두 전쟁을 원했지만, 소련과 미국은 전혀 전쟁할 생각이 없었다. 1948년 말까지 38선 곳곳에서 남북의 잦은 충돌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미·소 모두 전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은 현상 유지에 만족했고, 소련은 중국과 유럽의 공산화에 골몰해 있었다.그러나 상황이 조금씩 변해갔다. 중국 공산당이 장제스를 몰아내고 중국 본토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이 아시아 대륙 본토에 개입하길 꺼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은 장제스에게 보급품 등 물적 지원을 했지만, 군대를 파견하진 않았다.게다가 스탈린이 집중한 베를린 봉쇄 조치(소련이 서베를린에 대해 단행한 전면적인 물자공급 봉쇄 조치)가 미국과 영국이 원조에 나서면서 1년 만에 물거품이 돼 버리자 낙담한 스탈린은 아시아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북한과 남한의 힘의 균형이 공산당에 유리하다'는 북한 주재 소련 대사의 보고가 스탈린의 귀에 들어가고 있었다.김일성은 스탈린에게 1950년 6월에 진행할 구체적인 남한 공격 방안을 2~3개가량 제출했고, 스탈린은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했다. 공격 계획은 소련인이 주로 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벌인 고도의 기동전이 이들의 기본 전술이었다.그러나 모스크바도 베이징도 워싱턴의 의도를 오판했다. 미국은 전쟁 패배 후 일본에서 득세하는 좌파를 물리치고 워싱턴과 지속적인 동맹을 형성할 수 있는 일본 내 자유주의 체제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한반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한반도에 입지를 마련하면 중국이 공산당에 완전히 넘어가더라도 아시아 본토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고, 미국이 일본을 방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어 한반도는 일본 못지않게 중요했던 냉전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이다.또한 1940년대 말부터 워싱턴 정가에 들이닥친 매카시즘도 트루먼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다. 매카시 상원의원과 훗날 대통령이 되는 닉슨 상원의원은 정부가 공산주의에 물렁물렁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속해서 공격했다. 야당인 공화당의 맹폭 속에 트루먼의 국내 정치적 입지는 좁아지고 있었다.북한군이 38선을 넘어오자 트루먼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한층 더 축소하고 지구 차원에서 미국과 동맹 세력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공산주의가 벌인 전면적인 침략사건"으로 판단하고,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몇 주 만에 끝날 것이라고 장담한 김일성의 판단과는 달리, 엎치락뒤치락하는 비등한 힘겨루기 속에 전쟁은 3년을 끌고 갔고, 한반도는 황무지가 됐다."(한국전쟁은) 관련한 모든 나라에 쓸모없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남북한 자체에 미친 영향은 더욱 나빴다.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 350만명이 전쟁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한국인에게 전쟁은 민족 재앙이었고, 전쟁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으며, 그 비참함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유강은 옮김. 976쪽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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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산불로 초토화' 잿더미만 남은 LA 주택가, "너무 처참해" 사람과사회
    미국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 곳곳에서 11일(현지시간) 닷새째 대형 산불이 확산 중인 가운데, 이미 불길이 휩쓸고 간 일부 지역은 강제 대피령이 해제되면서 낮에는 주민과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해졌다.이날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기자가 찾은 LA 카운티 동부 내륙의 '이튼 산불' 지역 알타데나의 주택가는 그야말로 '초토화' 된 화재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먼저 이 산불의 최초 발화지인 주택가 도로 '알타데나 드라이브'와 '미드윅 드라이브' 근방으로 들어서자 휴대전화에 시끄러운 '대피 경고' 메시지가 뜨면서 공포감을 줬다. 대피 준비를 하라고 경고하는 이 메시지는 즉시 대피 명령보다는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이 동네 초입인 아래쪽에 자리 잡은 주택들은 멀쩡해 보였지만, 오르막 차로를 따라 산지에 가까운 쪽으로 접어들자 시꺼멓게 불에 타고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이어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새까만 벽체나 골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처참한 풍경이 나타났다.차로 중간에 이어진 한 골목길 입구에서 길 안쪽을 들여다보니 여러 채의 주택이 불에 타 전소된 모습이 보였다.차에서 내려 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폐허가 된 집터는 더 끔찍한 광경을 드러냈다.골목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집은 바깥쪽 벽체 일부만 남은 채 그 안쪽에 있던 모든 것이 타버려 형태가 남아 있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앞마당의 잔디가 깔린 부분만 불에 타지 않았고, 그 위에는 이 집의 어린아이가 탔을 법한 미끄럼틀만 온전히 남아 있었다. 잔디에 설치된 자동 스프링클러 덕에 땅에 습기가 있어 이 부분만 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잔디 마당 뒤편의 기다란 정원수는 밑동의 잎과 잔가지가 모두 타버리고 꼭대기 부분만 일부 남아 불길이 순식간에 휩쓸고 간 흔적을 보여줬다.그 뒤에 있는 집터는 상태가 더 심각했다. 앞쪽에 주차된 차는 보닛 일부와 뼈대만 남은 채 잿더미에 뒤덮여 있었고, 콘크리트 벽돌로 쌓은 외벽은 밑부분만 남긴 채 조각조각 부서져 내려 있었다.벽 안쪽에는 전자레인지와 오븐, 세탁기, 건조기 등 가전제품이 까맣게 타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이 집의 정문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나무 틀에는 성조기가 내걸려 있었는데, 갈기갈기 찢긴 채 윗부분의 조각만 간신히 매달려 있어 쓸쓸함을 더했다.골목 안쪽에는 어린이 관련 시설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에 쓰러진 철근과 철제 파이프 등 잔해만 남아 있었다.땅에 쓰러져 널브러진 벽체를 만져보니 단단한 콘크리트 재질로 보였는데, 종잇장처럼 무참히 구겨진 모습은 이번 화마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실감케 했다.그 뒷집 역시 잔디 마당과 그 위에 고꾸라진 농구 골대, 형체만 남은 세탁기·건조기, 자동차만 알아볼 수 있을 뿐,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였다. 집 뒤편의 큰 야자수 두 그루는 새까맣게 그을린 채 남아 있었다.지난 9일 LA 카운티 보안관 로버트 루나는 화재 현황을 전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일부 지역은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는데, 기자가 실제로 그 현장을 보니 그보다 더 들어맞는 표현을 찾기가 어려웠다.세계 최강대국으로 꼽히는 미국 중산층의 튼튼한 골조 주택도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현장에서 마주친 여성 리제트(43)는 이웃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 화재 피해 지역이 어떤지 걱정돼 가족과 함께 한번 둘러보러 왔다고 했다.현장을 직접 본 느낌이 어떤지 묻자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너무 처참하다"며 "매우, 매우 슬프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답했다.그는 이번 산불 피해가 이렇게 심각해진 이유에 대해 "아무래도 날씨 탓이 큰 것 같다"며 "LA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겨울에 이렇게 비가 안 오는 경우는 그동안 없었다"고 말했다.또 산불을 급속히 키운 돌풍에 대해서도 "바람이 이 정도로 심한 적은 결코 없었다. 분명히 (기후변화 측면에서) 뭔가가 달라졌고, 그게 정말 무섭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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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특집] 일주일째 LA 산불, 역대급 가뭄이 불쏘시개…”기후변화 심각” 사람과사회
    13일(현지시간) 현재 대형 산불 2건이 일주일째 확산 중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평년 겨울 기후와는 달리 심각한 가뭄이 수개월째 이어져 사태를 악화하고 있다.산불을 급속히 키운 것은 일명 '악마의 바람'으로 불리는 국지성 돌풍 '샌타애나'가 주범으로 지목되지만, 극도로 바짝 마른 풀과 나무들이 도처에서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이번 산불 사태 이후 만난 현지 주민들은 모두 "그동안 이렇게까지 비가 오지 않는 겨울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LA를 포함한 남부 캘리포니아는 여름에 매우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는 비가 자주 내려 온난 다습한 기후를 보이는 것이 통상적인 패턴이었다.특히 지난 2022년 11월부터 2023년 3월에는 수일간에 걸쳐 폭우를 유발하는 '대기의 강'(태평양에서 발원해 미 서부로 이동하는 좁고 긴 형태의 수증기대) 현상이 10여차례나 발생해 큰 피해를 낸 바 있다.지난 겨울(2023년 11월부터 2024년 2월까지)에는 LA 북서쪽 벤투라 카운티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역대 일일 최대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고, LA 카운티에도 상당한 비가 내렸다.하지만 이번 겨울은 달랐다.LA 카운티 내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부 내륙 라크레센타·패서디나·라카냐다-플린트리지 지역의 경우에는 겨울철에 속하는 지난해 11월부터 이날까지 3개월여간 단 1차례 비가 왔다. 그것도 몇 시간 동안 부슬부슬 조금 내리다 마는 정도였다.이 지역에 거의 집집이 마당에 한두 그루씩 있는 오렌지 나무는 겨울에 습기를 머금어 잎사귀에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열매가 점점 익어가며 커지는데, 올해는 잎사귀가 말라 오그라들고 열매 껍데기도 쪼글쪼글하게 줄어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달 31일 라카냐다-플린트리지에서 앤젤레스 국유림에 있는 마운트 윌슨 천문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직접 본 산의 모습은 나무들이 다 바싹 말라 초록빛이 아니라 갈색에 가까워진 상태였다.LA 공공사업부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대규모 '이튼 산불'(당국이 정한 산불 이름)이 발생한 앤젤레스 국유림 자락의 '이튼 댐' 관측소에서 측정한 작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3개월여간의 누적 강수량은 고작 2.3㎜에 불과하다. 이는 역대 같은 기간 평균치인 521.5㎜와 비교하면 228분의 1 수준이다.또 다른 대형 산불 '팰리세이즈 산불'이 발생한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의 '빅 록 메사' 관측소에서 측정한 지난 3개월여간의 누적 강수량은 5.08㎜로, 역대 같은 기간 평균치 421.6㎜ 대비 83분의 1 수준이다.LA 카운티를 관할하는 미 기상청(NWS) 지방사무소의 기상학자 라이언 키텔은 "(이번 겨울이) 기록상 역대 10위 안에 드는 건조한 우기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역 일간지 LA타임스에 말했다.LA 카운티 내 중심지인 LA시의 경우 기상학자들이 산불 위험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강수량 기준치 2.5㎜를 넘은 것은 지난해 5월 5일이 마지막이었다고 NWS는 밝혔다. 이후 8개월간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셈이다.미 가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LA 카운티 내 982만명 인구의 100%가 가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작년 11월 기준으로 지난 130년간의 동월 평균 기록상 21번째로 건조한 날씨였다.LA 카운티 전체의 지난 30일간 강수량은 과거 1991∼2020년 30년간의 동기간 평균치와 비교해 25∼50% 수준이다.대형 산불 2건의 총 피해 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34배가 넘는 도합 153.1㎢로 확산하면서 주민들은 비가 와주기만을 두손 모아 기도하고 있지만, 당분간 비가 내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다.기상학자들은 LA에 향후 일주일 넘게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으며, 이달 말까지도 강수 확률이 극히 낮다고 분석했다.LA 라크레센타에서 20여년간 거주했다는 교민 이모(41) 씨는 "여기 살면서 겨울에 이렇게 비가 안 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며 "기후변화가 정말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재작년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고생했는데, 겨울에 이렇게 큰 산불이 날 줄 몰랐다"며 "좋은 날씨 덕에 살기 좋았던 LA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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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특집] 빅터차 "韓, 정치공백에 트럼프 대비 어려워…패싱 위험" 사람과사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하면 한국에 대해 관세와 주한미군 감축 등의 압박이 예상되지만 한국은 계엄 및 탄핵사태에 따른 정치적 공백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고 미국 전문가가 관측했다.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하면 관세와 우크라이나 외교, 어쩌면 북한과 중국 문제에서도 매우 빠르게 움직일 텐데 한국은 현재의 위기 때문에 온전히 선출된 행정부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불리할 것"이라고 말했다.차 석좌는 정상 차원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조기에 관계를 쌓는 게 중요하지만, 지금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면 관세와 주한미군 감축이 한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정책 환경"이 될 수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이런 동맹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비할 전략을 구상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분을 연일 자랑하고 있어 북미 정상외교를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의 정치적 공백 때문에 미국이 한국과 협의하지 않고 이른바 '코리아 패싱'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봤다.차 석좌는 "한국에 대통령이 있을 때도 트럼프가 동맹을 건너뛸 것이라는 우려가 늘 있었다"면서 "트럼프는 이미 김정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역할이 1기 때보다 덜 두드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으로 대북 협상 여건이 트럼프 1기 때와 많이 달라졌다면서 "트럼프는 이 상황에 대한 답이 한미일 3자 협력이 아니라 미국, 러시아, 북한 간 3자 관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다음은 차 석좌와의 일문일답.이번 한국의 계엄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 정부의 시각은.▲ 한국 내에서 발생한 정치 분쟁이나 위기에서 어느 편을 드는 것은 미국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미국이 편을 드는 유일한 쪽은 민주주의다. 그것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헌법에 부합하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게 법에 의한 절차를 통해 이뤄지도록 한다는 의미인데 그게 한국 국민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과 함께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꼭 탄핵 찬성론자들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어떤 정치적 갈등이든 평화롭게,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이번 사태가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점은.▲ 윤 대통령 본인과 그의 대(對)일본 정책 같은 외교 정책 일부가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이 더 글로벌한 역할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봤다.나는 한국이 내부 갈등 때문에 윤 대통령의 여러 외교 정책을 정치적으로 평가하고, 그런 정책이 한국이나 국제 질서를 위해 좋은지 더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기보다 탄핵(소추)당한 대통령의 정책으로 여길까봐 걱정된다.대일(對日) 정책과 한미일 3자 협력, 대만 해협의 안정과 남중국해의 항행의 자유와 관련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꽤 나아간 입장,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나토 정상회의 참석,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참여, 우크라이나지원이 그런 정책이다. 한국이 막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하며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가 되는 시기에 이런 정책이 모두 사라질까 우려된다.또 다른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기에 한국에 적절한 절차에 따라 온전하게 선출된 대통령이 없다는 것이다.트럼프 행정부는 출범하면 관세와 우크라이나 외교, 어쩌면 북한과 중국 문제에서도 매우 빠르게 움직일 텐데 한국은 현재의 위기 때문에 온전히 선출된 행정부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불리할 것이다.그런 불리함을 극복할 방법은.▲ 세계 지도자 대부분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트럼프 1기 때 그랬듯이 트럼프와 개인적인 관계를 최대한 조기에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하지만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런 조기 만남이나 조기 정상회담을 요청해 성사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자 정상회의가 있으면 그 계기에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회동은 반일이나 하루 종일 하는 정상회담과 달리 보통 매우 짧다.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모든 동맹과 협력국에 보편 관세를 선언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정상이 트럼프를 만나 개별 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없다면 매우 불리하다.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기대는.▲ 미국 정부가 한 권한대행을 분명히 환영한다고 생각한다. 한 권한대행은 미국에서 평판이 훌륭하다. 그는 엄청 정치적이지 않으며 진정한 기술관료(technocrat)로 평가받는다. 알다시피 그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 정부 둘 다에서 일했다.이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맡을 사람으로 난 한덕수만한 사람을 떠올리지 못하겠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타임 인터뷰에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개인적인 생각에 트럼프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김정은을 자기 친구로 여기기 때문에 김정은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신문 1면을 장식할 외교 행사를 좋아한다. 트럼프에게 김정은과의 회담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유혹적일 것이다.한국의 정치적 공백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거나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협의하지 않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보나.▲ 물론이다. 한국에 대통령이 있을 때도 트럼프가 동맹을 건너뛸 것이라는 우려가 늘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그랬는데 한국에 대통령이 없으면 그 우려가 더 커질 것이다.트럼프 1기 때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트럼프와 김정은 간 중재, 대화, 중매 역할을 모두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트럼프는 이미 김정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역할이 1기 때보다 덜 두드러질 수 있다.트럼프 당선인은 북한 업무도 관장하는 대통령 특사에 리처드 그리넬을, 트럼프 1기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알렉스 웡을 수석 국가안보 부보좌관에 지명했다.▲ 트럼프는 그리넬을 매우 신뢰하기 때문에 지명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개의 다른 사태를 다루는 특사는 힘든 자리다. 사태 하나하나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네수엘라든 북한이든 그리넬을 지원하는 정부 부처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트럼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톱다운(하향식) 방식이 될 것이다.알렉스 웡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미국 정부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다. 매일 수백개의 현안이 그의 하루를 차지할 것이며 북한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에 있을 때만큼 북한에 시간을 투입하지 못할 것이다.북한의 상황이 트럼프 1기 때와 다르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아마 가장 큰 차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주는 안보 보장, 식량, 연료, 그리고 어쩌면 군사 기술은 아마 모두 김정은이 중국에서 원했지만, 중국이 주지 않거나 소량으로 준 것이다.이제 북한은 그 모든 것을 러시아에서 받고 있기 때문에 2018∼2019년과 비교하면 중국과 미국에서 받아야 할 필요가 줄었을 것이다.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에는 북한과 어떤 합의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냥 트럼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가 항상 하는 말 중 하나는 모든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어떻게든 관련된 모든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한다.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지만 한국전쟁에 해당할 수도 있고 그는 한국전쟁에서 어떤 종류의 평화 협정을 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트럼프는 북한이 평화 협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값을 치르기를 바라는가(라는 점이다).2018∼2019년과 다른 점은 북한이 러시아와 매우 깊은 관계라서 평화 협정을 위해 (북한이) 그렇게 큰 값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으며 비핵화나 그런 종류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하지만 트럼프의 특징은 모든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자연스러운 대응은 미국, 일본, 한국 간 3자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그러나 트럼프는 이 상황에 대한 답이 한미일 3자가 아니라고 결정할 수도 있다. 그는 미국, 러시아, 북한 간 3자 관계가 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트럼프이기 때문에 우리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그간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와 북한 핵위협에 대비한 확장억제를 강화해왔는데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 전망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핵협의그룹(NCG)과 워싱턴선언을 계속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하지만 트럼프는 군사 훈련이 매우 비싸다고 생각해 돈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한미 간 확장억제 회의와 대화는 계속되겠지만 이를 훈련으로 뒷받침하지 않거나 트럼프가 한국이나 일본에 미국의 훈련 참여 비용을 내라고 요구할까 걱정된다.그렇지만 위기에 빠진 한국 정부에 훈련 비용 부담은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난 확장억제 강화가 명목상으로는 이어지겠지만 (이에) 필요한 훈련이 빠질까 걱정된다.한국이 관세나 주한미군 감축을 피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한국이 관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동맹과 협력국과 관련해 정말 초점을 맞추는 지표는 상품 무역수지인데 한국은 미국과 510억달러 무역흑자가 있다. 난 트럼프가 반사적으로 어떻게 하든 그냥 관세를 부과하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한다.또 트럼프가 첫 임기 때 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 임기 때는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을 줄이려고 하고 싶어 할 것이다.다시 말하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 위기는 이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한국 정부는 두 가지에 대해 매우 신중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트럼프의 이런 정책 우선순위를 상쇄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관세와 주한미군 감축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정책 환경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확실하게 자리 잡은 정부가 없으면 이런 종류의 패러다임 전환 논의와 대화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런 변화를 관리하거나 조정하고 전략을 구상할 정부가 (한국에) 없다.한반도 안보 상황이 악화하면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의 자체 핵무기 개발을 허용할 가능성은.▲ 트럼프가 과거에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 발언을 실제 정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한국에서 핵무장 목소리가 훨씬 커질 것이다.차 석좌는 한국이 주요 7개국(G7)에 추가로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이번 계엄·탄핵 사태 때문에 힘들어졌다고 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고, 주요 20개국(G20)과 브릭스(BRICS)도 답이 아니기 때문에 글로벌 거버넌스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CSIS에서는 한국, 호주, 스페인, 네덜란드 같은 국가가 G7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우수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G7의 개혁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 국가가 G7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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