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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8
    [특집] 소통하는 크리스천(5) 소통은 뉴스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과사회
    네팔에서 들려오는 홍수 소식 앞에서는 숫자를 읽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사망자 몇 명, 실종자 몇 명이라는 통계 뒤에는 어젯밤까지 함께 밥을 먹던 가족이 있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있다. 집 한 채가 사라졌다는 말도 단순히 벽과 지붕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사진과 식탁, 오래 쌓아온 추억까지 함께 쓸려갔다는 말이다.최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빙하와 암반 붕괴로 큰 홍수가 발생했다. 강을 따라 밀려온 물과 진흙은 마을과 도로, 다리와 발전시설을 덮쳤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남겨진 가족들은 병원과 구조 현장을 오가며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그 참혹한 재난 속에서 유난히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오랜 시간 버틴 한 사람이 구조된 것이다. 가족들은 이미 희망을 놓고 장례식까지 치렀는데, 구조대원이 잔해 속에서 아주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누군가 그 소리를 들었다.나는 사람의 소통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더 잘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좋은 표현을 찾고, 더 쉽게 설명하고,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물론 그런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말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잘 듣는 것은 아니다.진짜 소통은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보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에서 시작한다.네팔 현장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들도 자신들이 주고 싶은 것을 먼저 정하지 않았다. 현지 주민과 지방정부, 지역 공동체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 대답을 바탕으로 식량과 생필품, 대피시설을 준비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자기중심적인 도움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고 만족한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묻는다.사람과 사람 사이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우리는 곧바로 해결책부터 내놓으려 한다. “이렇게 해봐”,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해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다.고통 앞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태도는 그 의미를 너무 빨리 설명하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더 조심하지 않았는지 말해 주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잘 정리된 설명이 아니다. 함께 울어줄 사람이고, 오늘 밤 몸을 덮을 담요이며, 목이 마를 때 건네는 물 한 병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고통보다 우리의 설명이 먼저 나가서는 안 된다.이번 네팔 재난은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묻게 한다. 히말라야의 빙하와 영구동토가 불안정해지면서 산악 지역의 재난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적게 소비하고 적게 배출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정의의 문제이며 이웃의 문제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을 돌본다는 말도 나무 몇 그루를 심는 데서 멈출 수 없다. 내가 쓰는 에너지와 소비하는 물건, 익숙하게 누리는 생활방식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소통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만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도 생각한다.재난 앞에서는 국적과 종교, 문화의 경계도 넘어야 한다. 도움을 주기 전에 “당신은 누구입니까?”부터 묻는다면 우리의 관심은 너무 좁아진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가 아니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재난은 며칠이 지나면 뉴스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삶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무너진 집을 다시 짓고, 생계를 회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오랫동안 견뎌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도 한 번의 기부나 짧은 위로로 끝나서는 안 된다.소통은 한 번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일이다.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힘든 일을 겪으면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연락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줄어든다. 정작 그 사람이 가장 외로운 순간은 모두의 관심이 사라진 뒤일지도 모른다.소통하는 사람은 그때 다시 연락한다. “요즘은 어때?” 짧은 한마디지만 그 안에는 “나는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우리가 당장 네팔까지 갈 수 없고 큰돈을 보낼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믿을 만한 구호기관을 돕고 피해자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가까이에 있는 외로운 이웃을 돌아볼 수도 있다. 멀리 있는 고통을 바라보는 일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더 잘 보게 해야 한다. 나는 다시 잔해 속에서 들려왔다는 작은 목소리를 생각한다. 세상에는 지금도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그런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목소리가 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는 사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부담을 줄까 봐 입을 다무는 사람이 있다.소통하는 사람은 그런 작은 목소리를 듣는다. 더 크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자기 입장을 설명하는 데 빠른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아픔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그래서 재난 앞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장 강력한 소통은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네팔의 홍수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나를 위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먼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그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서로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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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
    [특집] [발행인의 시선] 사람과사회 사이에서(4) 변하는 세상, 지켜야 할 것 오래 살다 보니… 사람과사회
    지난 주말SoFi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컨서트를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젊은이들이 한국어 노래와 ‘아리랑’까지 떼창하는 모습에 51년전 처음 미국에 떄가 떠올랐다.한국의 음악은 커녕 마늘냄새, 김치냄새를 걱정했고 한국이 도대체 어디인지 설명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이제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 음악을 찾아 듣고 한국 음식을 즐기며 한국어를 배운다. 한 이민자의 삶 속에서 고국의 문화적 위상이 이렇게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 특별한 경험이다.BTS 의 컨서트에서 한인으로의 긍지를 느낀것과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요즘 미디어 현장에서도 비슷한 충격을 경험한다. 바로 AI다.지난 30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고 신문과 영상을 만들었다.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으로, 방송에서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로 무대가 넓어질 때마다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AI가 가져온 충격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자료 조사와 번역, 정보 비교와 정리는 물론 문장을 다듬고 이미지와 영상 제작을 돕는 데까지 활용되고 있다. 미디어 종사자에게 이보다 유용한 도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그래서 오히려 고민이 생긴다.나는 AI를 활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AI에 지배당하고 의존하고 있는가.기자가 현장을 찾아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며 사실을 확인하는 대신 AI가 찾아준 정보를 정리하는 데 익숙해진다면 저널리즘의 본질은 어떻게 될까. 매끄러운 문장을 빨리 만들어낼 수 있어도 취재 현장에서 만난 사람의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 말하지 못한 사연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우려보다 더 경계되는 것은 따로 있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어느 틈엔가 조금씩 내려놓고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기사와 인터뷰는 글솜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취재할 것인지 결정하고,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며,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독자에게 전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이 먼저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다른 방향에서 물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AI는 많은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묻고, 그 답을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미디어 사역자에게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시대와 함께 달라져 왔다.그러나 도구가 달라진다고 목적까지 달라져서는 안 된다. 얼마나 빨리 만들었느냐보다 무엇을 왜 전하는가가 중요하다. 화려한 콘텐츠보다 그 안에 진실과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SoFi 스타디움에서 세계의 젊은이들의 아리랑 떼창을 보며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AI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 앞에 서 있다.AI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 언론이 될 것인가보다, AI 시대에도 우리는 무엇을 지키는 언론으로 남을 것인가.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야 할 때가 지금이다.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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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특집] <Focus on God> 안강희 선교사 “한 종족을 품고 기도하는 데서 미전도종족 선교는 시작됩니다” 사람과사회
    오랫동안 미전도종족 선교 현장을 섬겨온 안강희 선교사가 CHTV ‘Focus on God’에 출연해 자신의 신앙적 배경과 미전도종족 선교, 예수영화 사역,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선교 현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 선교사는 유교적 전통이 강한 장남·장손 가정과 불교적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 이웃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가면서 처음 복음을 접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경험이 지금까지 미전도종족을 향해 사역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진행 및 정리: 아나운서 윤우경/총괄본부장윤우경 아나운서: 오랜만에 뵙습니다. 처음 뵌 지도 20여 년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예수영화를 가지고 세계 곳곳을 다니셨는데 지금까지 미전도종족 선교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이 사역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습니까?안강희 선교사: 저희 집은 유교 전통이 강한 장남·장손 가정이었고 불교 가정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옆집 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해서 주일학교에 처음 갔습니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평안해 보였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평안과 행복을 우리 가정에도 주신다면 믿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이후 가족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할머니와 작은아버지, 고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정 자체가 복음을 접하지 못했던 하나의 작은 미전도 현장이었던 셈입니다. 누군가 저를 한 번 교회에 초청했기 때문에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 살든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 번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윤우경: 미전도종족을 멀리 떨어진 특정 민족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라는 관점이군요. 선교학적으로는 미전도종족을 어떻게 구분합니까?안강희: 언어와 인종을 중심으로 보는 민족언어학적 분류가 있고 사회·문화적 차이까지 고려하는 분류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카스트나 사회집단 등에 따라 별개의 종족집단으로 보기도 합니다.현재 선교계에서는 복음화율이 매우 낮은 종족 가운데 특히 복음의 자생적 확산 기반이 거의 없는 집단을 ‘Frontier People Groups’라고 부릅니다. 윤우경: 선교사님의 사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예수영화’입니다. 어떻게 시작된 사역입니까?안강희: 빌 브라이트 박사가 영화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면서 예수님의 생애를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이후 예수영화가 제작됐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사용됐습니다.특히 문자가 없거나 문자 사용률이 낮고 구전문화가 강한 지역에서는 영상이 중요한 복음 전달 수단이 됩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도 그런 지역에서는 효과적인 선교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윤우경: 현장에서 예수영화를 통해 실제 변화가 일어난 사례도 있었습니까?안강희: 많이 있습니다. 최근 보고받은 사례 가운데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에 가까운 카슈미르 지역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자 한 강경한 사람이 찾아와 위협했습니다.그때 그리스도인은 “나를 죽이더라도 내 인생을 바꾼 이 영화는 한번 봐 달라”며 예수영화가 담긴 메모리카드를 건넸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영화를 반복해서 본 뒤 마음이 바뀌어 자신이 위협했던 사람을 다시 찾아와 예수님에 대해 더 가르쳐 달라고 했고, 이후 신앙을 갖게 됐다는 보고였습니다. 지금은 그 지역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윤우경: 종교와 문화가 다른 지역에 접근할 때 특별히 지키는 선교 원칙이 있습니까?안강희: 제 경험을 생각합니다. 누군가 처음부터 저에게 짧게 복음을 설명하고 가족의 전통을 버리라고 했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변화된 삶을 보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하셨는지를 들으면서 ‘우리 가정에도 저 평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먼저 평안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낯선 지역에 들어가 처음부터 개종을 요구하기보다 그 사람과 가족, 마을을 위해 기도하고 평안을 빌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관계가 형성되면 오히려 현지 사람들이 먼저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과정을 통해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윤우경: 그렇다면 지역교회는 미전도종족 선교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안강희: 로마서 15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교회에 스페인 선교를 이야기하며 동역을 요청합니다. 오늘의 교회도 먼저 세계 어디에 복음을 접하기 어려운 종족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이미 해외 선교사를 지원하는 교회라면 그 선교사가 사역하는 나라 안에 어떤 미전도종족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존 선교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도 새로운 종족을 만날 수 있습니다.또 한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하고 전문직으로 일하고 여행합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 언어로 된 성경이나 복음 자료, 예수영화 같은 자료를 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Gift the Nations’, 그 민족에게 예수님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업도 여행도 복음과 연결되면 선교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윤우경: 그렇다면 목회자와 평신도, 청년이나 기업인이 실제로 참여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안강희: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특정 나라나 종족을 알고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다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직접 방문할 수도 있고, 현지 사역자와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지난 30년 동안 저희는 지역교회에 미전도종족을 소개하고 현지 사역자나 선교사와 연결해 종족 개척에 협력하도록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현재도 여러 국제 선교 네트워크를 통해 현지 사역자들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윤우경: 최근에는 특히 인도를 중심으로 사역해 오셨는데 이유가 있습니까?안강희: 인도에는 아직 복음의 자생적 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종족과 교회가 없는 지역이 매우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2009년부터 현장 사역에 더 깊이 참여했습니다.처음에는 현지 사역자를 모집하고 지원하는 일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와 함께 “사람을 보내는 일만 하지 말고 우리도 직접 들어가자”고 결정했습니다. 인도에서 평신도와 목회자를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했고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도 현지 개척 사역자들을 훈련해 왔습니다.지금은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아 현지 교회와 사역자들이 직접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를 세워가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윤우경: 마지막으로 방송을 보고 계신 교회와 성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안강희: 저희 가정이 구원을 받은 시작은 아주 작았습니다. 옆집 친구 한 사람이 저에게 “교회에 가자”고 말해준 것이었습니다.세계 어느 곳을 가든 아직 한 번도 복음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꼭 선교사가 아니어도 됩니다. 한 교회가 한 종족을 품고 기도할 수 있고, 한 성도가 한 민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갈 수 있다면 찾아가고, 갈 수 없다면 기도하면서 현지 사역을 도울 수 있습니다.한국 민족 외에 ‘제2의 나의 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종족을 정해 보십시오. 교회가 한 종족을 품고 성도들에게 기도제목으로 나눠주십시오. 선교는 거창한 계획보다 한 민족을 알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윤우경: 결국 우리 삶은 누군가에게 통로가 되는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한 종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통해 지금도 계속됩니다.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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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
    [특집] [발행인의 시선] 사람과사회 사이에서(3) “저들도 나를 그리 받아주면 좋겠다” 사람과사회
    요즘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전에는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보면 왜 저럴까 싶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지켜볼 때도 그랬다. 같은 일을 놓고 시각이 너무 다르고, 이해관계에 따라 불통만 지속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불편하기 짝이없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저 사람도 자기가 아는 만큼, 능력만큼, 생각하는 만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저러는 것이겠지.’그렇게 생각하고나니 마음속의 격동이 조금씩 가라앉았다.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려야 할 때는 물론 분명히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다고 매번 결별하고 연을 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아는 만큼 판단하고, 살아온 경험의 테두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 테니까.8월에는 필자의 가정에 특별한 일이 있다. 작은아들 내외의 첫 딸, 내겐 첫손녀가 첫돌을 맞는다.한 살짜리 아이를 보노라면 그 아이의 시각이 궁금해진다. 선입관이라곤 전혀 없이 아무런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는 그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하며 며칠 마다 한번씩 만나는 이 할머니를 어찌 여기고 있을까.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할머니인 나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물려 줄 수 있을까.다르다고 틀린게 아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장애물도 때론 축복이 되기도 한다는 깨달음 만큼은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가 되어 가길 기대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는 21일간 진행중인 새벽기도회를 기다린다.제5차 차세대 목회자 초청 영적대각성 새벽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차세대’라는 말을 생각하면 이제 목회자들만 떠오르지 않는다. 첫돌을 맞는 손녀도, 교회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우리가 떠난 뒤 이민교회와 이 사회를 살아갈 젊은이들 모두가 다음 세대다.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기도하는 교회를 물려줄 것인가. 서로 생각이 달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공동체를 남길 것인가. 새벽기도회를 앞두고 그 질문이 먼저 나에게 돌아온다.정치도, 교회도, 사람 사이의 관계도 크고 작은 파도는 끊이지 않는다. 나 역시 그 파도 속에서 여러 번 고비를 맞았고 또 맞을 것이다. 파도가 없기를 바라기 보다 파도를 마딱뜨릴지라도 중심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의견이 달라도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이길 소망한다. ‘저 사람도 저 사람 나름대로 애쓰며 사는 것이겠지.’그렇게 생각하면 불편했던 일도 달리 보인다. 답답하고 서운했던 일들도 다시 돌이켜 본다. 파도는 여전하지만 모든 파도에 내 마음까지 함께 출렁일 필요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배워간다.첫돌을 맞는 손녀의 단풍잎 같은 작은 손을 잡으며, 21일 새벽 함께 기도할 사람들의 손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손도 생각해 본다.그들의 생각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손까지 놓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향해 “저 사람도 나름대로 애쓰며 사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듯, 저들도 나를 그렇게 받아주면 참 다행이겠다.나 역시 내가 아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믿는 만큼 애쓰며 살아가는 한 사람일테니 말이다.이번 8월에는 그런 마음으로 새벽을 맞는다.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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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
    [특집] [김병학컬럼] 소통은 서로 다른 사람을 같은 무게로 존중하는 일이다 사람과사회
    “음악은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사랑받아야 한다.”BTS(방탄소년단, 한국 가수 그룹)가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기로 하며 전한 말이다. 단순히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아시아 음악을 별도 부문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과연 공정한지,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 문제 제기다.그래미는 아시아 음악의 성장과 영향력을 인정하고 더 많은 아티스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새로운 부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취지만 보면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다. 그동안 주목받기 어려웠던 음악과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무대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좋은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상을 만든다는 것은 더 많은 인정을 뜻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당신들의 자리는 따로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기존의 기준은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칸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과연 진정한 포용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 질문은 음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분류한다. 출신 지역, 학력, 세대, 성별, 국적, 정치 성향까지 수많은 기준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편의를 위한 구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기준이 사람을 설명하는 이름표가 된다. 이름보다 범주가 먼저 보이고, 한 사람의 삶보다 그가 속한 집단이 먼저 읽힌다.사람을 나누는 일은 쉽다. 하지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분류는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지만, 그 과정에서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는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란 차이를 없애는 곳이 아니라, 차이가 있어도 같은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BTS의 선택이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이 더 많은 수상 기회보다 평가의 원칙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별도 부문이 아시아 음악의 가시성을 높이고, 아직 세계 시장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신인들에게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누기는 어렵다.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만이 아니다. 그 제도를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환영의 공간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진짜 소통은 "좋은 뜻이었다"는 설명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대가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 감정 뒤에 어떤 경험이 쌓여 있는지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다. 장애인, 이주민, 청년, 노인, 지역 주민을 위한 별도의 정책과 공간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중심에서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배려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함께 설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음악은 원래 경계를 넘어선다. 좋은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먼저 국적부터 묻지 않는다. 가사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슬픔과 기쁨은 전해진다. 진심은 번역보다 빠르고, 감동은 국경보다 넓다. 아마 BTS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별한 대우를 원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구분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BTS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는 앞으로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던진 질문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누군가를 여전히 예외로 구분하고 있지는 않은가.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문턱은 그대로 두고 있지는 않은가.사람은 이름으로 불릴 때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범주로만 불릴 때는 쉽게 일반화되고 소비된다. 음악도 다르지 않다. 어느 지역의 음악이기 전에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받을 때, 예술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소통은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을 같은 무게로 존중하는 일이다. 그런 시선이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누군가만을 위한 별도의 무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설 수 있는 무대 자체를 더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다.어쩌면 이번 논란의 핵심은 상의 개수가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가치를 국적이나 언어, 인종 같은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라고 가르쳐 왔다. 그렇기에 누구도 '주류'와 '비주류'라는 잣대로 구분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다름은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선물이다. BTS가 던진 질문 역시 결국 음악을 넘어 우리 사회를 향한다.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범주를 떠올리는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존엄한 존재로 마주하는가. 진정한 소통은 바로 그 시선이 바뀌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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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특집] "여보, 얼마 주고 샀어?"…AI가 불러온 '결혼생활 위기' 사람과사회
    인공지능(AI)이 사진만으로 제품 정보를 파악하고 시세를 추정하는 ‘디지털 감별사’ 역할을 하면서 기혼자들의 소비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과거에는 전문가나 동호인들만 알 수 있었던 제품 정보가 AI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손쉽게 제공되면서다.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아내가 생성형 AI로 새로 산 키보드 값을 정확히 알아내 난처해졌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작성자는 100만원이 넘는 고가 키보드를 구매했지만, 아내에게는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계 전자상거래(C-커머스) 플랫폼에서 값싸게 부품을 산 뒤 15만원 정도 들여 교체한 것”이라고 둘러댔다.그러나 이를 수상하게 여긴 아내가 생성형 AI에 키보드 사진을 올려 가격을 물어보자 AI가 실제 가격에 근접한 답변을 내놓으면서 거짓말이 들통났다.그는 “와이프가 컴퓨터를 잘 몰라 지금까지는 넘어갔는데 AI 때문에 결혼생활에 대 위기가 왔다”고 토로했다.고가 취미용품 가격을 배우자에게 축소해 설명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고가 취미용품 가격을 배우자에게 낮춰 설명하는 것은 평화 유지를 원하는 기혼자들의 오래된 ‘비책’이다.해외 취미 커뮤니티에서는 “내가 죽으면 아내가 물건을 내가 말한 (저렴한) 가격대로 처분할까 봐 두렵다”라는 문구가 밈처럼 사용된다. 낚시 장비와 골프채, 카메라, 게임기, PC 부품 등 고가 취미 용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배우자 몰래 비용을 숨기거나 실제보다 저렴하게 설명하는 상황을 풍자한 표현이다.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 같은 농담도 점차 통하지 않게 됐다.지난해 3월 한 해외 자전거 동호회 페이스북 그룹에는 “AI의 새로운 피해자가 됐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게시물에는 아내가 생성형 AI에 고급 자전거 사진을 올린 뒤 “남편은 이 자전거가 300달러(약 46만원)라고 했는데 맞느냐”고 묻는 대화 화면이 담겼다. AI는 자전거의 브랜드와 부품 구성을 분석한 뒤 “수천 달러 상당의 고급 모델로 보이며, 사양에 따라 1만달러(약 1천500여만원)를 넘을 수 있다”고 답했다.게시물에는 “왜 이런 걸 공개해서 우리까지 배우자에게 혼나게 하나”, “디지털 고자질쟁이”라는 농담 섞인 반응과 함께 “AI의 피해자가 아니라 배우자에게 거짓말하다가 들킨 것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변화는 취미 용품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AI를 활용해 제품의 적정 가격을 추정하는 서비스가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이용자가 판매한  명품 시장에서도 AI 감정 서비스가 등장했다.트렌비가 지난해 10월 선보인 사진 기반 AI 정·가품 감정 서비스 ‘클루비’는 사용자가 명품 사진을 업로드하면 AI가 이미지를 분석해 정·가품 가능성과 근거를 제시한다. 사람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하던 감정 영역에도 AI가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과거 전문가나 동호인의 경험에 의존했던 정보에 일반 소비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사진만으로 제품 가치와 특성을 추론할 수 있는 AI가 등장한 배경에는 멀티모달(텍스트·이미지 등 여러 형태의 정보를 함께 처리하는 AI) 기술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AI비즈니스 전문가들은 “예전 이미지 인식 AI가 ‘이것은 가방이다’ 정도 분류에 머물렀다면 최근 멀티모달 AI는 로고와 형태, 부품 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제품의 가치까지 추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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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특집] [김병학컬럼]소통은 말 뒤의 신호를 듣는 일이다 사람과사회
    어떤 밤에는 방 안의 불은 꺼져 있는데 휴대전화 화면만 오래 켜져 있다. 누군가는 메시지를 썼다가 지운다. “나 너무 힘들어.” 다시 지운다. “혹시 지금 통화할 수 있어?” 그것도 지운다. 결국 남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야”다.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는 숫자가 아니다. 그 지워진 문장들의 흔적이다. 말하지 못한 고통, 듣지 못한 공동체, 연결되지 못한 도움 요청이 그 뒤에 있다.   2025년 9월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고려대 의대 이요한 교수 연구팀은 세계보건기구와 유엔 자료를 바탕으로 2001년부터 2020년까지 55개국 청년 자살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 20~39세 여성 자살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18.9명으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일본 12.0명, 미국 6.8명보다도 훨씬 높다. 특히 2016년 이후 한국 청년 여성의 자살률은 해마다 8% 넘게 증가했고, 세계 평균 여성 청년 자살률 5.07명과 비교하면 거의 네 배에 가까웠다. 연구팀은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로 보았다.   이 수치를 보며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젊은 여성들은 말해도 닿지 못하고, 도움을 청해도 연결되지 못하는가.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충동으로만 설명하면 안 된다. 물론 한 사람의 내면에는 타인이 다 알 수 없는 어둠이 있다. 그러나 그 어둠이 깊어지는 과정에는 반드시 관계와 환경이 있다. 말할 수 없는 분위기,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 도움을 청해도 실제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제도. 그런 것들이 겹칠 때 위기는 조용히 커진다. 소통은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다. 소통은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그 신호 앞에서 멈추고, 실제 응답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능력이다. 말은 있었는데 응답이 없었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다. 상담 창구는 있었지만 삶의 자리까지 닿지 못했다면, 그것도 충분한 소통이 아니다.   가정은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때로 가장 먼저 침묵을 배우는 곳이 된다. 사회는 많은 말을 요구하지만, 정작 약함을 말할 자리는 좁다. 제도는 도움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한 사람의 밤까지 닿지 못할 때가 많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도움을 청했다면, 그는 이미 살기 위해 움직인 사람이다. 그 요청이 끊어지지 않게 붙잡는 것이 사회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끊어진 고리를 다시 이어야 할까. 정부, 학교, 직장, 의료 체계가 당연히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행정 절차 속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산다. 자주 마주치는 얼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말없이 곁에 앉아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교회를 말할 수 있다. 다만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교회가 지금 그 역할을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교회는 아픈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우울을 믿음 부족으로 오해했고, 불안을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단정했으며, 여성의 고통을 “참아야 할 몫”처럼 다룬 적도 많았다. 어떤 교회는 젊은 여성들에게 쉼보다 봉사를, 질문보다 순종을, 자기 목소리보다 조용한 헌신을 먼저 요구했다. 그런 교회라면 대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침묵 구조가 된다.   그럼에도 교회가 대안이 될 가능성을 말하는 이유는, 교회가 본래 붙들어야 할 인간 이해 때문이다. 사람은 성과로 환산될 수 없는 존재다. 쓸모가 줄었다고 가치가 줄어드는 존재도 아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버려지는 존재도 아니다. 한 생명은 조건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은 종교 안에만 머물 말이 아니라, 지금 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기본적인 윤리다.   교회가 이 믿음을 실제 관계로 살아낸다면, 교회는 다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 평가받지 않고 울 수 있는 자리.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리. 고통을 설명하지 않아도 잠시 숨 쉴 수 있는 자리. 혼자 견디던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자리.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그런 관계다.   교회가 정말 교회다우려면 고통을 빨리 해석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묻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들어야 한다. 아픔을 교훈으로 만들기 전에 한 사람의 삶을 먼저 붙들어야 한다. 신앙의 언어가 사람을 살리려면, 그것은 정답처럼 던져지는 말이 아니라 곁을 지키는 몸짓이어야 한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 증가는 우리 사회가 덜 듣고 있다는 증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듣고도 충분히 응답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가정은 감정을 훈계하기 전에 들어야 한다. 사회는 경쟁과 평가만으로 사람을 몰아붙이는 방식을 멈춰야 한다. 제도는 도움 요청을 접수하는 데서 끝나지 말고 실제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자신이 잃어버린 역할, 곧 아픈 사람의 곁이 되는 일을 다시 배워야 한다.   누군가 “나 힘들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닐 수 있다. 구조 요청일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빠른 조언이 아니다. 판단도 아니다. 먼저 멈추는 일이다.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일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함께하면 좋을까.” 어쩌면 한 사람은 바로 그 한 문장 때문에 오늘을 건널 수 있다. 소통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도,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된다.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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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특집] [주성철컬럼]학교에서 자녀의 안전과 부모의 권리 보호. 사람과사회
    요즘 캘리포니아주에서 급부상하는 이슈가 있는데 그것은 AB495 법안이다. 이것은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AB 495 법이 공립학교에서 학생을 데려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심각한 혼란을 야기했다. 부모로서 여러분은 자녀를 학교에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명확한 정보와 통제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본 태평양 법률협회(Pacific Justice Institute)는 비상 연락처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자녀를 데려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학부모용 통지서를 제작했다. 이 통지서를 작성하여 자녀의 학교에 제출하면 된다. 이 통지서는 응급 구조대원이 출동하는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녀를 비상 연락처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에게 인계할 수 없음을 학교에 명확히 알리는 내용이다.목적: 이 법적 통지서는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다. (1) 자녀를 학교에서 데려가거나 데리러 올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부모 또는 법적 보호자의 권한을 재확인한다. (2) 자녀를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을 비상 연락처로 등록한 사람으로 제한한다. (3)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사람이 “보호자 동의서”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4) 화재, 총기 난사 사건 또는 생명을 구하는 병원 이송과 같은 응급 상황의 경우, 공식적인 응급 구조대원만이 자녀를 이송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한다. 이 통지서를 자녀의 학교에 제출함으로써, 귀하는 교육청에 귀하의 의사를 서면으로 명확히 전달하고 가족의 법적 보호를 강화할 수 있다.이용 방법: 학부모 안내문은 다음과 같다. (1) 서면으로 변경하거나 철회하지 않는 한 2025-2026학년도 전체에 적용된다. (2) 자녀의 이름, 학년, 학교가 명시된다. (3) 응급 상황 발생 시 응급 구조대원을 제외하고는 비상 연락처 목록에 없는 사람은 자녀를 학교에서 데려갈 수 없다. (4) 이 안내문을 무시할 경우 학부모 또는 보호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학교와 교육청이 책임을 질 수 있음을 고지한다.이 자료 사용 방법: 본 협회에서는 AB495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학부모들에게 공지하고 학부모나 관계되는 사람은 본 협회 웹에 들어가 양식을 다우로드 받아 필요한 내용을 기입하고 학교로 우송하도록 하다. 본 협회 양식을 다운로드받아 작성할 수 있기를 바라는바다. https://mailchi.mp/pji.org/ab-495-parental-notice-form. 중요한 것은 빠짐없이 모두 작성해야 하고, 자녀 이름, 학년, 학교를 입력하고 본인의 이름을 도렷하게 쓸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부모 또는 법적 보호자로서 서명하고 날짜를 적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작성한 모든 서류는 학교 행정사무실에 제출하고 사본은 각자가 보관하도록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공립학교에서 반 기독교, 반 가족 사상을 주입시키는 가운데, 자녀들의 교육을 공립학교에서 책임진다는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가정을 떼어 놓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하교시 누구든지, 즉 부모나 법적 보호자가 아닌 사람이 얼마든지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AB 495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은 물론이고 반 가정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내용을 보시는 분들은 가능한 한 주위분들에게 널리 알려 줘서 아동들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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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특집] [발행인의 시선] 사람과사회 사이에서(1) “분열보다 연대가 필요한 시대” 사람과사회
    ​신문을 만들다 보면 복잡한 상황속에 있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목회자, 사업가, 봉사자, 정치인, 교사, 그리고 이름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까지 말입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 다르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함께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쩐지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편을 가르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어쩌다 미국의 정치나 한국의 정치 이야기가 등장하면 결국엔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고, 세대 간의 생각 차이는 갈수록 커져 갑니다. 심지어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우리 이민 역사를 돌아보면 사실 지금의 한인사회는 수많은 협력과 연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단체를 만들고, 후배 이민자들을 도우며 오늘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습니다. 혼자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서로 손을 잡아주고 밀어주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함께 가는 것보다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각자 자기 시각에서 옳고 그르다는 흑백 논리가 모든 것을 앞지릅니다. 물론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달라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같은 목적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마음일 것입니다.특히 우리 한인사회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1세대가 일군 터전 위에 2세대와 차세대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간의 차이도 나타나고, 가치관의 변화도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을 갈등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이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많습니다. 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여러 어려움과 갈등을 수년간 겪으면서도 다시 연합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참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주변에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실어 주려고 마음 쓰는 모습을 보게 되면 왠지 가슴이 웅장해 집니다.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고 공동의 사명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연합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사람과사회”는 창간 이후 지난 5년간 해 왔던대로 앞으로도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큰 성공을 거둔 인물들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를 조금은 더 살만한 사회로, 조금 더 풍성하고 조금더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마음 역시 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이번 한 달도 누군가와의 “작은 차이”보다 “함께할 수 있는 더 큰 이유”를 먼저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A time for Unity rather than Division..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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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특집] 제2회 한국전 참전용사에게 바치는 청소년에세이대회 열려 사람과사회
    올해로 두번째 열린 청소년 에세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글로벌힐링아트(대표 김은미)는 한인 청소년들이 한국전참전용사기념비가 있는 풀러톤에서 제2회 G.H.A.T 청소년 에세이 대회 시상식이 뜻깊게 열렸다고 밝혔다.글로벌 힐링 아트 테라피(Global Healing Art Therapy, GHAT)는 예술을 통해 개인의 감정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비영리 단체로 예술, 음악,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창의적 매체를 활용하여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문가를 위한 임상 치료가 아닌, 예술을 기반으로 한 비임상적 커뮤니티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사회 봉사로 노숙인(홈리스)을 대상으로 한 아트 봉사 및 수제 아트 키트 제공, 지역사회 캘리그래피 버스킹 등을 통해 따뜻한 메시지를 나누기도 한다. GHATS는 '자녀의 미래를 세우는 시편 기도회(자.미.세)'와 같은 모임을 통해 부모의 마음 회복과 자녀를 위한 영성 활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리버데일(Riverdale) 지역에 Global Healing Creative Arts Therapy Studio를 운영하며, 워크숍이나 그룹 세션을 위한 공간 대여 서비스도 제공한다. 글로벌 힐링 아트는 미국 연방정부에 등록된 501(c)(3) 비영리단체로, 지역사회 연결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중이다. 김은미 대표는 공식 웹싸이트에서 “우리 단체는 청소년들이 예술적 봉사활동과 창의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자신감과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커뮤니티 센터, 문화기관 등과 협력하여 청소년들이 사회적 책임감과 리더십을 경험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예술 기반 봉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저희는 예술과 나눔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봉사를  통해 정신적웰빙과 사회적 회복력을 키워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상식 행사는  "California Art University Student Ensemble"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시작됐는데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 울려 퍼진 미국 국가와 애국가는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총 35명의 참가자가 정성껏 써 내려간 글을 통해 영웅들을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는데 어른부부터 초·중·고등부까지, 각 부문의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성인부 Mi Jung Bak(Adult 1등), Morgan Kim(Adult  2등)고등부 1등 Sharon Kim(9학년,Orange County School of the Arts), 2등 *Stella Hahm(10학년 Orange County School of the Arts) *Ashlyn Yi(9학년, Ruben Ayala High School) *Christina  Ryu(9학년, Sunny Hills High School), 3등 *Juha Joel Chang(11학년, High School), *Joshua Chung(10학년, Portola High School), *Hajung Woo(11학년, West Ranch High School), *Kyle Hahm(11학년, Sunny Hills High School)중등부 1등  Jianna Bak(8학년, Cedarlane Academy), 2등 *Siyoon Lee(8학년, Middle School), *Rinnah Bak(7학년, Cedarlane Academy), 3등 *Hayul Bak(8학년, Seoul Academy), *Haeyul Park(8학년, Seoul Academy) *Juhun Hong(7학년, Beatty Jr High)초등부 1등 Gabriella Lee(1학년,  Frances Meeks Elementary School)<고등부 1등> Young Oak Kim: Freedom is not free | Sharon Kim / 9th GradeImagine fighting a war where the cold alone could kill you. During the Korean War, soldiers had to deal with temperatures so low that their rifles would freeze and frostbite could set in within minutes. On top of all that, they still had to fight the enemy. One officer who led his men through these brutal conditions was Young Oak Kim, a Korean American commander whose bravery made him one of the most respected figures of the war. As a Korean American myself, his story feels personal to me. Young Oak Kim's life proves that freedom is never free. He spent his whole life paying for it, first by pushing through discrimination, then by leading soldiers through one of the hardest wars in American history, and finally by coming home and continuing to fight for his community. Young Oak Kim was born in 1919 in Los Angeles to Korean immigrant parents, which is something I can relate to because my family has a similar background. Life was really hard for him growing up. His family didn't have much money, and being Asian American back then meant dealing with a lot of racism. Even though he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people treated him like he didn't really belong here. Historian Ronald Takaki wrote that Asian Americans during this time constantly felt like they were both insiders and outsiders in American society (Takaki 7–8). I think a lot of Korean Americans still feel that way sometimes, even today. Before he ever put on a uniform, Kim was already fighting just to be treated as an equal. But instead of giving up, he used those experiences to push himself harder. He even served in World War II with the 442nd Regimental Combat Team, a unit made up mostly of Japanese American soldiers who were fighting for a country that had put their own families in internment camps. That really says a lot about the kind of person Kim was becoming. When the Korean War started, Kim served as an officer in the U.S. Army's 7th Infantry Division. This war feels especially close to me because Korea is where my family roots are. The whole peninsula was being torn apart. Families were separated and entire cities were destroyed. According to the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soldiers had to fight in conditions where the weather and terrain were just as dangerous as the enemy itself. It was dangerous in every direction. What made Kim stand out was how much he actually cared about his soldiers. Instead of staying somewhere safe and giving orders, he went out to where his men were, even under enemy fire, just to check on them. The U.S. Army's leadership manual says that good leaders have to stay calm and make smart decisions even when everything is chaotic (U.S. Department of the Army, FM 6-22, Ch. 2). His soldiers trusted him because he was right there with them, going through the same dangerous things they were. Every single day in Korea was proof that freedom has a price, and Kim and his soldiers were the ones paying it. After he retired as a colonel, Kim moved back to Los Angeles and became really important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He worked hard to improve education, create more opportunities, and give Asian Americans a bigger voice in politics at a time when they were being ignored. Historian Sucheng Chan wrote that Asian American history has always been about fighting to be recognized and included in America (Chan 3–5). That really means something to me because my own parents came here hoping for exactly that. A real chance at a better life. There is even a center named after him called the Young Oak Kim Center for Korean American Studies, which helps students get better opportunities and become leaders. When I read about that I thought about how hard my own parents have worked to give me a good education. Kim understood that freedom isn't just about surviving a war. It also means having access to school and a fair shot at life. Young Oak Kim's story means a lot to me because I see parts of my own family's story in it. He was the child of Korean immigrants, he faced discrimination, and he still chose to serve and fight for this country. He fought in a war on the same peninsula my family comes from, and when he came home, he didn't stop. He kept working to make life better for his community. My parents came to America because they wanted a better life and more freedom. Kim's story reminds me that none of that was free. A lot of people worked really hard and gave up a lot for the opportunities I have today, and that's not something I want to take for granted. Works Cited Chan, Sucheng. Asian Americans: An Interpretive History. Twayne Publishers, 1991. Takaki, Ronald. Strangers from a Different Shore: A History of Asian Americans. Back Bay Books, 1998. U.S. Department of the Army. Field Manual FM 6-22: Army Leadership. 2006.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Korean War Operational Conditions and Combat Reports." U.S. Army, https://history.army.mil. Korean War historical archive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https://www.archives.gov. ............................................ <성인부 1등> The Miracle of Life Wrought by the Wings of Conviction  – In Honorof Colonel Dean Hesse | Mi Jung Bak / 성인부Throughout my long career as a nurse, standing on the front lines where life and death intersect, I have learned that life is a treasure as precious as it is fragile. Today, within this meaningful space of Global Healing Art Therapy—where we strive to mend historical wounds through the power of art—I wish to reflect on the legacy of a true hero: Colonel Dean Hess. He was a man who, as a soldier, exemplified the most sublime height of humanity.In December 1950, the sub-zero temperatures of the Korean Peninsula were more than just a matter of weather. Amidst the desperate chaos of the January 4th retreat, over 1,000 war orphans were left stranded in Seoul. In that tragic moment, when most would prioritize their own safety, Colonel Hess made a decision that resonates with me far beyond any military achievement. Instead of waiting for formal orders, he chose to prioritize the lives of dying children. Through "Operation Kiddy Car," he mobilized 15 transport planes to evacuate these orphans to the safety of Jeju Island. It was the most radiant bloom of life to emerge from the darkest of battlefields.His devotion was never a mere temporary relief effort. He poured his soul into the "Bout One" project, laying the foundation for the Republic of Korea Air Force and personally training Korean pilots. Even after the war, he donated the entire proceeds of his autobiography to build orphanages in Korea. The "Hope Village" he established in Jeju became a cradle of healing, mending the emotional scars of the conflict and planting seeds of dreams back into the hearts of children.As a mother raising two daughters in Los Angeles, I have always emphasized to them that the peaceful lives they enjoy today are not a given. Just as the children Colonel Hess saved grew to become the pillars of modern Korea, his motto, "I Believe I Fly" (Shin-Nyeom-Ui-Jo-In), has become a guiding compass for my daughters, teaching them the value of devotion to others.The freedom we enjoy today is the most valuable legacy, bought by the blood and sweat of our veterans. I now deeply understand that what you protected so fervently was not just territory, but the innocent laughter and future of our children. I will carry your noble sacrifice in my heart forever and pledge to live a life that sows seeds of peace. To Colonel Dean Hess and all the veterans who served: I offer you my eternal respect and deepest gratitude.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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